“할머니라도 젊고 예쁜 할머니가 좋죠? 훨씬 더 대접받겠죠?” 온라인 게시판의 질문이다. 한국의 동안 열풍은 이제 아줌마들을 넘어 할머니들에게까지 불어온 지 오래다. 70대 내 어머니 역시 동안 외모를 바라신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배우들의 얼굴에만 관심 집중! 어쩜 저리 아직도 젊어 보이냐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동안 시술에 무관심하던 한 친구조차 성형외과 광고를 보고 있자니 해야 하나 싶더란다. 연예인 아닌 일반인들까지 젊어지고자 보톡스, 필러, 하다 하다 거상 수술까지 감행한다. 어릴 적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1992년 개봉한 메릴 스트립과 골디 혼 주연의 헐리웃 영화)를 보고, 미국은 참 괴이하군! 싶었건만 이젠 한국이 세계적인 성형 선진국이 되어 미용관광을 오는 외국인들마저 허다하다.
많은 이들이 동안 외모를 가꾸는 건 나를 위해서라 주장한다. 거울로 보는 내가 이뻐 즐겁고 남들에겐 인정받으니 뿌듯하다고. 난 한때 SNS 인플루언서가 되려 했다. SNS에서는 비주얼이 먼저라니 하지 않던 화장을 매일 하고 피부과도 다니며 관리했다. 조금 유명해지자 온갖 칭찬과 선물공세 등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기쁨은 잠시, 점차 허무가 밀려왔다. 누굴 만나도 상대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어딜 가든 치장하고 나가느라 이미 피곤해졌고, 내가 어찌 보이는지가 가장 중요했던 마음으로 진솔한 소통이 가능했겠는가? 타인에겐 조금의 관심도 주지 못했다. 나의 외모 집착이 비대한 자아를 키웠고 결국은 내 콘텐츠를 은근히 따라 하던 한 친구에게 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나를 비난했고 억울함에 내면은 더 피폐해졌다. 참으로 유치 찬란했던 나!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그중 성숙하고 지혜로우며 마음 넓은 이는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타자와 연결되고자 시작한 SNS에서 겉모습에 집중하다 고립되었지만 남을 원망하며 내 과오는 보지 못했던 나는 열하일기를 읽으며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연암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고자 하나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낭송 열하일기' 103페이지 ) 라며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외모관리가 최대 과제라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날 알아주는 지기가 바로 옆에 있다한들 고개 돌려 보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실상은 이러한데 동안 얼굴 가꾸기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대접받으려 예쁜 할머니가 되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푸대접하는 꼴이다. 진정 대접받으려면 자신부터 내 모든 모습, 나이 듦의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노화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야망, 경쟁심, 욕망의 감소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더 진정한 의미의 자기 자신이 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게 되죠.” (‘건강의 배신’ 218 페이지, Betty Friedan 인터뷰) 이처럼 피해야만 한다 여기는 노화의 이면을 본다면 남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주도하는, 동시에 진정한 친구까지 가진 평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젊음의 묘약을 파는 ‘죽어야 사는 여자' 영화 속의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말한다. “전 봄을 따라다녀요. 가을과 겨울은 본 지가 오래되었죠.” 봄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어찌 가을의 결실이 있을 수가 있으며 겨울을 견디는 지혜와 강인함을 기대할까? 이제 난 화장하지 않고 다닌다. 피부과나 청담동 미용실도 가지 않는다. 다른 이를 만나도 내 외모가 어때 보이는지는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비대한 자아가 줄어드니 타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편하니 관계 역시 편안해졌다. 노년은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것이지만 어떻게 맞이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청년기가 지났는가? 그렇다면 동안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童) 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평안을 얻는 지혜를 연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