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莊子) 에게서 배운 지혜 하나
“너는 있어서 그래!”
나에게는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가 더 맞는 것 같아서 비즈니스는 접겠다는 말을 한 후 친구가 해 준 말이다. 그때 나는 죄책감, 억울함, 의구심을 느꼈다.
죄책감은 나의 40+@년 인생을 설명해야 이해되는 이젠 사소한 감정이라 패스.
몇 달간 고심해서 결정한 것인데 “있어서" 그렇다는 한마디로 정리되는 것이 잠시 억울했고 ‘돈 버는 것이 힘드니까, 나태해져서 공부를 도피처로 삼는 것일까?’라는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은 꽤 길게 갔다. 그런데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첫 학기의 교재로 읽어야 할 책들이 심히 어려워 도피했더라도 여우굴을 피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꼴이 되었다 싶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찌어찌 꾸역꾸역, 하지만 띄엄띄엄 공부하며 견디다 보니 어느새 2학기의 과제를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만난 장자의 글이 나의 결정에 대한 의구심을 제법 없애 주었다.
“명장 수가 손을 놀리면 그림쇠나 곱자로 그린 것보다 뛰어났습니다.
그의 손이 사물과 일체가 되어 저절로 움직이니 마음속으로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고 막히지 않습니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띠가 잘 맞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잘 맞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마음의 동요가 없고 밖으로 사물을 좇지 않는 것은
만나는 일마다 딱 맞아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잘 맞는 데에서 시작하여 잘 맞지 않은 일이 없게 되면
잘 맞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낭송 장자』중 3-9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 북드라망 출판사
아!! 그랬구나~!
내가 편하지 않았던 것이었군?!
매일같이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유튜브, 온라인 스토어도 만들어 판매해 보고, 베이킹 클래스까지, 뭘 해도 잊기는 고사하고 그 일의 존재감이 나를 압도할 정도로 컸으니.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어서 그랬구나…
그렇다면 왜 편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는 매일같이 오늘 한일과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종종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고, 새벽부터 눈이 뜨여 별 의미도 없었던 조회수, 좋아요 수, 댓글 수 등 그놈의 숫자들에 연연해 가며 거기에 끄달리고 있었는데,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그 일들은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고 다만 내가 잘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하루빨리 인정받고 싶은 허무한 욕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성공한다 한들 도대체 성공의 기준이 뭔데?
만족할 만한 숫자의 끝은 있는 걸까?
그리고 “성공" 한다 해도, 그래서 뭐 하려고?
이런 질문들이 생기면서 그 일에 쏟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기 시작했다. 또 힘들어 도망치는 건가…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이당의 금요 대중지성 1년 과정에 등록했고 이제 9달째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럼 지금은 편안한가?
아, 무척 편안하다. “안으로 동요가 없고 밖으로 사물을 좇지 않는 것은 하는 일마다 딱 맞아 편안하기 때문이다"라는 장자 말씀에 ‘핵 공감!’ 마음속의 갈등이나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하나도 생기지 않아 이상할 정도이다.
남보다 나아야 한다거나, 못해서 망신당하지 말자는 그런 생각을 지우니 배움을 즐기고 꾸준히 과제를 ‘하기’만 하자는 마음으로 접근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런…!!! 발표 전날 과제를 다 마무리하지 않았음에도 마음 편~히 장자에 관한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었던 것은…
“과제를 잊는 것은 공부가 딱 맞아 편안하기 때문이다"
라는 경지에 이른 것일까? ㅋㅋㅋ (물론 다음날 새벽에 잘 끝냈지만)
“있어서" 그렇다는 말로 시작된 나의 고민은,
결국 “없어서"가 이유였다. 내가 할 일의 올바른 방향성이나 철학이 전혀 없었으니 불편함이 당연했다는 결론으로 나의 어정쩡한 사유는 여기서 마무리. 하지만 난 아직 명장도 뭣도 아니니 과제를 잊을 정도로는 편안해지지 말자는 결심을 하고, 오늘도 책과 함께 성찰하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