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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 Aug 03. 2024

알코올 중독에 관한 단상 Ⅱ

돌고 돌아 제자리

그러니까 이런 거다. 몇 년 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남동생에게 기적을 바라선 안 된다고 잔소리했었다. 입시를 무사히 마친다고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지 이제부턴 네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 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뿐이라고. 그런데 그 말 이 그대로 시간을 빙 돌아 내 등에 날아와 박혔다. 언제나처럼.


중독에서 벗어났다. 단지 중독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깔린 불안이란 생의 안개가 사라지는 기적도,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내 걸음을 따라 끈질기게 들러붙던 우울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선명하게 마주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괜찮지 않은 것들을 괜찮다는 말로 자주 외면하던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남 들 눈에, 자주, 주변을 배려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불편함조차 외면해 왔다. 


세계는 '나'라는 울타리를 넓혀나가며 만들어진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한 능력은 스스로를 이해하며 발달하는 법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타인의 몸짓이나 말투에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써야 했던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을 의식하는 데에 써버렸다. 


그저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유아기적 욕구만을 간직한 채로, 타인에 대한 이해력은 처참한 상태로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설프게 주변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은 되려 주변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겉돌았다. 그리고 그 겉도는 느낌마저 '예민한' 나의 착각이라고 되려 나를 탓했다. 단 한순간도 나 자신을 마주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였다. 그러는 동안 내 뱃속에는 전 괜찮아요 라는 말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ㄴㅓㄴㅡㄴㅈㅓㄴㅎㅕㄱㅗㅐㄴㅊㅏㄴㅎㅈㅣㅇㅏㄴㅎㅇㅏ

「10이 참기 힘든 정도라고 했을 때, 1에서 10까지, 얼마나 아파요?」

입원 당시 처방 외 약을 받으려면 꼭 대답해야만 했던 질문이었다. 별 거 아닌 질문이다. 적당히 대답하면 서로 편한 질문이다. 그 질문이 나는 매번 곤란 헸다. 나는 그 질문이 죽도록 어렵고 싫었다.

「대체 참지 못하는 고통이 어느 정도예요? 저는 못 참는 고통 그런 거 없어봤어요. 약이 필요하니까 대충 6-7이라고는 대답했어요. 저한테 두통 정도는 그냥 항상 1이란 말이에요.」

나는 뒤늦게 선생님께 따지고 들었다. 그때에 그 자리서 따지지 못하고.

선생님은 그저 듣고 계셨다.

잘못된 것은 질문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아픈 것 하나 제대로 표현할 줄도 모르면서 그저 모두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고통에 점수를 매기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프다, 아프지 않다. 나는 그저 거기서 끝이었으면 좋겠다. 아픔에 정도가 있다는 건 어느 정도는 견디라는 말이다. 그래 어느 정도는 견딜 줄도 알아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맞는 말도 아니지 않나.

06/28/2019

맞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요 라는 말을, 영문도 모를 눈물을 가까스로 거른 채로, 내뱉은 것은, 내가 서른이 되던 해 여름이었다.


근데 저는 자주 안 괜찮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많은 일들을 괜찮다는 말로 겨우 어르고 달래서 깊숙이 묻어 뒀어요. 그렇게 살아오면서 무뎌졌어요. 겨우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오랜 일들이 모두, 사실은 하나도, 단 한순간도 괜찮지 았았다고, 괜찮지 않다고 말해서 뭐가 달라져요? 나는 당시 주치의 선생님께 화를 냈다. 괜찮을 리가 없는 일에 너무 자주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100m 앞에서 파란불로 바뀐 횡단보도의 신호가 싫었다. 나에게 인생이란, 달려야만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의 연속처럼 보일 뿐이었다. 생이란 나에겐 그런 것이다. 건너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하는 기억들이 있고, 자랑스러운 내가 있는 것이 보인다 한들, 건너고 싶지 않았다. 건널 힘이 없었다.


누군가에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능한 것들이 내겐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면 남들이 괜찮은지 살피기 이전에 스스로 가 괜찮은지를 먼저 살피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지 않아. 언제나 내가 타인의 불쾌함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 나는 지금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이런 말들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어야 했다.


술을 마시면, 그런 노력 없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숨 쉬는 게 가능했다. 단순히 중독자의 변명처럼 들릴지라도. 그런데 술이 고장 났다. 술을 마셔도 도저히 괜찮아지지 않게 됐다. 그렇게 떠밀리듯, 중독에서 벗어났다.

모든 극복이 유쾌하진 않았던 거다. 깊어진 자기혐오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선, 미약하게나마, 나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노력하기 시작하면 해내고야 만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나에겐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비웃 거나 말거나 묵묵히 해낸 경험들이 나의 어둠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우스워졌다. 더 깊게 떨어지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하는 것처럼. 내 발밑을 자꾸만 자꾸만 무너트리는 자기혐오는 하루가 다르게 바닥보다도 깊어졌다.


외로움이란 타인의 선량한 마음을 믿지 못하는데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친절은 모두 부채 같았다. 힘내라는 가벼운 말조차 힘을 내서 일어서는 모습으로 갚아야 하는 빚 같았다.


개인에게 객관적인 시각이란 존재할 수 없다. 타인을 보는 눈은 이미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 나아가 생각마저도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하니까 나는 나의 그림과 글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 생각마저도 부끄러워졌다. 미웠고 혐오스러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잤다.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멀리했다. 중독에서 벗어난 내 앞에 놓인 것은 그 런 지옥이었다.


재수하던 해에 썼던 두고두고 떠올리는 일기가 있다. 아무리 바닥을 쳐도 그 바닥에는 나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결국 나다. 내가 웃을 때 함께 웃던 세상이 내 울음에 고개를 돌려도,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 주는 내가 있고, 내가 일어서기로 마음먹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던 것도 나였다. 그러니 다시 한번 나는 나를 잡고 일어서는 법을 익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제는, 맨 정신으로 말이다.


녹는 눈이 산허리를 흐르는 시냇물의 흐름을 만 들어낸다. 대부분의 경우에 시냇물의 흐름을 미리 결정하고 종국적으로 그것의 전체 흐름을 바꾸어놓을 울퉁불퉁한 지형은 미리 형성되어 있기 마련이다-그러나 그 물줄기가 오른쪽으로 향할지 왼쪽으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마침 그곳에 우연히 놓여있는 돌 하나, 나무줄기 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자기의 회복, 하인즈 코헛


Mar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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