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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Jan 15. 2024

가족은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와 딸기 셰이크 같은 것

[백수비망록 EP. 04] :: 한 번쯤 해보면 좋은 것들

1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텅 빈 계좌 잔고로 인해 자취집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던 난, 퇴사 이후 도망치듯 본가로 향했다. 따뜻한 집밥과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귀여운 반려견,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곳.


밀린 월급과 퇴직금, 재취업에 대한 걱정이 파도에 휩쓸리 듯 몰아치려 했다. 부르즈 할리파만 한 높이와 잿빛으로 가득한 그 무언가. 모든 소리를 먹어버린 듯한 고요함이 주는 공포감. 다시 한번 그 파도에 휩쓸린다면, 이번엔 도무지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약 1년간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나는 파도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나의 주변을 휘감아도는 파도는 나를 바닥 그 너머 어딘가의 검은 공간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듯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TMI; 지금은 끊었다),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나에게 본가는 그 무언가의 파도를 발바닥이나 발목에서 찰랑거릴 정도의 수위로 낮춰주는 일종의 재활원 같은 곳이다. 강아지의 숨소리와 짖는 소리 나를 핥는 따스한 온기, 가족들의 대화 소리, 생활 소음들. 과하지 않게 나를 깨우는 각성제 역할을 하는 것들. 갈망하던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이제는 해방!'이라 외치던 홀가분함이 무색하게 적당한 독립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업급여를 받게 되며 왕복 거리가 지하철 한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자취집과 본가를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출퇴근할 곳이 없어진 나에게 신체적인 움직임을 줄 수 있는 수단이 된 셈이다. 재취업을 위해선 스터디 카페처럼 집중력을 쏟아부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자취집이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나로선 자취집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공간이다.





수영은 방울방울


엄마와 함께 사이판과 베트남 여행을 한 동생이 수영에 푹 빠져버렸다. 맘 놓고 휴가를 즐기며 리조트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 그 매력에 헤어 나올 수가 없었나 보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계속해서 수영을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과 자신의 어설픈 수영실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인 동생을 잘 알기에, 본가 근처 수영장으로 자유 수영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때 그 시절 롯데리아 메뉴


수영을 즐겨하셨던 아빠의 영향으로, 나와 동생은 동네 수영장 유치부 강습을 통해 수영을 접했다. 수영 강습이 끝나면 건물 내에 있던 롯데리아에서 불고기 버거와 딸기 셰이크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퉁퉁 불어버리다 못해 쭈글쭈글해진 손가락 끝을 만지작 거리며 동생과 장난을 치고 있다 보면, 주문한 햄버거와 셰이크를 가져와 '먹자!' 하던 아빠의 모습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햄버거와 셰이크를 주문하는 아빠의 뒷모습이 어찌나 널찍해 보였던지. 달달한 불고기 소스를 입에 묻혀가며 넘긴 햄버거가 묵직하게 느껴질 때쯤 인공 감미료가 가득 섞인 딸기 셰이크를 마시며 운동의 피로를 풀었더랬다.


오래간만에 방문한 수영장 특유의 락스냄새가 내심 설레었다. 수영장을 주름잡는 어르신들은 벌써 그들만의 그룹끼리 모여 수다 삼매경에 빠져계셨다. 자유수영 시작 시간에 맞춰 준비운동을 한 후 따뜻한 수영장 물에 들어갔다. 어릴 때 배워둔 자전거 타기와 수영은 커서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동생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마 조금 더 수영을 할 줄 아는 내가 수영장 물에 익숙해지는 방법부터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수영은 몸의 힘을 빼야 하며, 악쓰지 않아야 한다. 수영 선수 출신도 아니거니와, 평영도 마스터하지 못한 채 수영을 멈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건방지다 할 수 있겠다만 저 두 가지는 내가 수영을 하며 체득한 것 중 가장 주요한 것이다. 고급반이나 연수반 레일에서 수영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나 수영해요~!' 하며 유난 떨듯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마치 유수풀에 떠가는 튜브마냥 조용히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스트로크 두세 번에 한 번씩 숨을 내쉬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면, 마치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 같다.


몸에 힘을 줄수록 물속으로 가라앉기만 할 뿐이며, 마이클 펠프스라도 된 것 마냥 멋진 영법을 구사하며 빠르게 헤엄쳐 가겠다 악을 써봐야 차례를 지켜가며 출발한 앞사람과의 충돌만 일으킨다. 여러 번 입과 코로 물도 먹어보고, 깊게 잠수도 해보며 물과 친숙해져야 한다. 여러 차례 수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물속이 지상에서 산책을 하는 것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야매 강습에 따르던 동생은 자유 수영 시간이 끝나갈 때쯤 힘이 풀려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수영을 마친 후 굶주림이 밀려온 우리는 롯데리아에 갔다. 이제는 메뉴에서 사라져 버린 셰이크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불고기 버거와 다른 메뉴를 주문해 먹었지만, 아빠와 함께 먹었던 롯데리아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백수가 된 후 가족들과 함께한 첫 수영이라는 또 다른 추억 거리가 생겨났다.





자취집에서 밥 해 먹기


직장을 다녔을 땐 쿠팡에서 냉동 볶음밥과 냉동식품을 잔뜩 시켜 쟁여놓거나,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었다. 주문 가능한 최소 주문 금액에 맞춰 담아 배달 음식을 시키면 하루 2~3만 원은 뚝딱 써버렸었다. 점심도 밖에서 해결하고,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다 보니 특유의 음식 맛에 질려버렸다. 금세 허기지고,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허무함이 있었다.



'나 이제 집에서 밥 해 먹을래.'


주말을 본가에서 보내고 자취집으로 향하는 날, 본가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기밥솥을 챙겼다. 딸의 집밥 챙기기 소식에 엄마는 부랴부랴 쌀과 김치, 된장 등을 챙겨주셨다. 식초, 간장, 설탕 등 하나라도 부족할까 더 챙겨주려던 엄마. '이건 이럴 때 쓰고, 요리할 때 이거 넣으면 감칠맛이나.' 요리가 서툴고, 낯선 나에게 엄마는 이런저런 것을 알려주셨다. 집밥은 편안함을 준다. 조미료와 설탕을 쓰는 것에 있어서는 바깥 음식이나 배달 음식과 다를 바 없음에도 달라도 뭔가 다르다. 우리 집은 김장을 하지 않고 맛이 좋다는 김치를 사서 먹는데, 사 먹는 김치라도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아빠와 수영을 하고 사 먹었던 햄버거와 딸기 셰이크가 그런 걸까. 모두가 아는 그 맛인데,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는 남다르다. 안정감과 행복감, 허기짐 없는 배부름을 선사한다. 가족과 함께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혼자 있어도 혼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


그래, 가족은 나에게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그리고 딸기 셰이크다.












사진: UnsplashThoma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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