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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Jan 22. 2024

오늘도 빛나지 않았던 나에게

[백수비망록 EP. 05] :: 그냥 2월부터 시작하자

한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백수 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온 것 같다.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가득 찬 일과가 꼴 보기 싫어지고 있다. 새벽 4~5시쯤 도파밍(Dopamine+Farming)을 마친 뒤 오후 12시를 넘긴 시각에 잠에서 깬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한 잔씩 하고도 남는 시간에 기상이라니.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벌써 하루가 다 갔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침대에서 꼬물딱 거리며 다시 도파밍을 시작한다.


분명 퇴사 후 2주까지만 탱자탱자 놀아보자 했던 것 같은데. 내일부터 시작하자는 다짐과 오늘처럼 살지 말아야지 라는 후회를 거듭 반복할 뿐이다. 직장인임에도 미라클 모닝, 갓생 라이프, 자기 계발 등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을 보며 경의를 표했다. 약간의 각성상태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정도는 했었으나, 지하철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무언가를 깊게 공부하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들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실행하고 실천했다면, 백수로 맞이하는 오늘이 조금은 달랐을까.


입만 벌리면 구라를 치는 사람마냥 글로써 스스로를 자책하고 반성하는 척 '여러분, 앞으로 저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행위는 그만하기로 했다. 어차피 실행하지 않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차라리 실제로 실행하고, 행동했다면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감싸고도는 것은 1인칭 시점의 글쓰기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온갖 핑곗거리만 늘어놓는 것뿐인데, '힘든 나, 노력해 보려고 애쓰는 나'에 심취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이 배제되고, '그래, 이 정도면 괜찮다.' 하며 스스로를 오도하는 글을 쓰게 되더라. 그렇기에 그런 글은 이제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괜찮은 건 절대 괜찮은 게 아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도파밍을 하며 새로운 유튜버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여행, 캠핑, 운전, 반려동물 위주의 알고리즘을 타며 유영하는 편인데, 뜨랑낄로 (Trankilo)노마드션(No mad Shaun) 이라는 두 유튜버가 나를 사로잡았다. 뜨랑낄로는 유창한 영어, 스페인어 실력을 보여준다. 노마드션은 중국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유창하게 하며 영어, 스페인어, 불어 등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다. 그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거리낌 없이 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서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영상을 보며 느낀 것은, 언어가 반드시 유창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문법이 어쩌고, 단어가 어쩌구 영어가 어려워 손을 놓고 있던 나는 근거도 없이 영어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정도는 되어보자 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기초가 매우 부족한 영어실력이기에, 유튜버 코햄의 영상을 참고해 EBS 초등학생 영어 교재를 구매했다. 기초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렵다. 분명 알고 있는 것임에도 교제를 풀어가며 다시 공부하려니 헷갈리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비싼 학원이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TV, 인터넷만 봐도 흐르다 못해 넘치고 있는 것이 영어와 관련된 공부법들이다. 아직 쉐도잉을 시작하긴 이르다고 생각하기에, 기초 회화 영어를 틀어놓고 큰 소리로 따라 말하거나 아이폰의 언어 세팅 값을 영어로 맞추는 등 영어와 조금 더 친숙해지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어색한 부분도 많고 대치동 초등학생들(유치원생도 가능하겠다.)이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할 노릇이겠지만, 부끄러운 게 뭐가 대수냐. 내 영어 실력 키우는 게 중요하지.





뭐라도 하실거죠?


지난주 금요일은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회사 대표가 출석하기로 한 날이었다. 원래 출석일 보다 약 2주 정도 미뤄진 일정이었는데,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생각해서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마쳤길 바랄 뿐이다. 워낙 무뚝뚝하신 담당 조사관님께서는 연락이 없는 것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남기셨는데, 별다른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체불된 임금이나 퇴직금에 대한 이의제기는 없는 것 같다. 간이대지급금 신청을 위해 필요한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간이대지급금 신청을 위해선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가 필요한데, 제발 이번 주 안으로는 등기가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슬슬 속이 타기 시작한다. 회사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거니와, 주변인을 통해서도 회사 사정이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중요해진 고물가 시대에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의도치 않게 궁핍한 삶을 산다는 것은 꽤나 신물감이 난다. 그나마 다음 주는 실업급여가 나오니 빨대로 숨을 쉬는 듯 숨은 쉬겠다만, 언제쯤 뻥 뚫린 시원한 숨을 들이내 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수영을 제대로 배워보자


지난 주말에도 자유 수영을 다녀왔다. 동생은 기필코 오늘은 자유형을 끝내겠다 선전포고를 했던 터라, 의도치 않게 야매 속성 수영법을 가르쳤다. 음파 호흡법은 사실 음파가 아니야부터 발차기를 하지 않아도 수영을 할 수 있어 같은.

어린이 풀장에서 두 팔과 다리를 둥둥 띄워주고만 있자니, 이래서는 2시간 내에 헤엄도 못 치고 끝나겠다 싶어 초보 레일로 끌고 갔다. 집 근처 수영장은 국제규격인 50m 길이를 자랑하는데, 다른 지역에서 수영원정을 오신 분들이 25m를 왔다 갔다 하다 50m를 수영하려니 힘들어 죽겠다며 지친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만큼 초보에겐 빡센 곳. 동생은 못한다며 진저리를 쳤지만,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수영인 만큼 못해도 일단 가보라고 했다.


초보레일은 어차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분들이 연습하는 곳이기에,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괜찮다. 심지어 바로 옆 레일이 걷기 운동을 하는 레일임에도 초보 레일에서 걸어가는 분도 계셨다. 앞장서 출발해 동생이 자유형 하는 모습을 봐주었다. 짧고, 안전하다 느끼는 곳에서 편안함을 가지고 수영을 하는 것보다 낯설지만 모두가 비슷한 실력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레일에서 수영을 하는 동생의 수영 실력이 훨씬 빠르게 늘었다. 지난주 보다 훨씬 길게 수영을 하고, 자세가 좋아졌다. 힘들면 잠시 쉬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동생은 자신도 모르게 수영 실력이 늘었다며 좋아했다.


나에게 수영을 배우는 것보다, 수영강사에게 배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기에 훨씬 낫기에 본가에서 가까운 복지관 수영장에 강습을 등록하기로 했다. 나에게 야매로 수영을 배우는 것은 정식 강습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조금 빠르게 배울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체력을 기를 수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자유수영으로는 좋은 자세를 잡기에는 택도 없다. 뭐든 기초가 중요하기에, 전문적인 강사를 통해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접영을 못하기에 이참에 나도 강습을 등록해 기초부터 단단히 다지고, 접영까지 마스터해보고자 한다. (이왕이면 돌핀킥까지)





이번 달은 어영부영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영어 공부는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이방인과 한 방에 갇혀있는 듯 대단히 낯설고 어색하게 하고 있으며, 수영은 내가 할 줄 아는 영법으로만 헤엄치며 다닌다. 월급과 퇴직금은 어떻게든 해결이 나겠지 라며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다. 내일부터 하자며 UX와 관련된 도서를 읽지 않았고, 관련 강의를 듣지도 않았고, 관련 아티클만 쓱- 눈으로 훔쳤을 뿐이다. 내일배움카드발급 대상자도 됐겠다, 이런저런 강의를 들으며 배움에 있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실천하길 바란다.



더 결단력 있고, 행동할 수 있길.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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