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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Apr 03. 2024

입사 첫날, 입사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미국 회사에서 이직은 처음이라서

내 브런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나는 최근에 미국 샌디에고에 있는 Q사에서 산호세 A사로 이직을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anjosero


우여곡절 끝에, 퇴사를 잘 마무리하고 HR에게 안내받은 입사일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

첫날에 어떻게, 무엇을 하라는 별다른 지시는 없었지만, 우선 가면 알려주겠지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는 대충 눈치껏 visitor centor라는 곳으로 가서 나의 이름을 말하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슬슬 내 주변으로 나처럼 A사에 입사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서너 명 정도 오기 시작했다.


미국 회사는 입사와 퇴사가 유연하기 때문에 입사 첫 날도 이렇게 대충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각자 담당하는 HR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떠났고

그때까지도 나는 계속해서 혼자였다.


한참을 더 기다린 후에, 갑자기 입구에서 나를 처음 도와주신 분이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담낭씨, 제가 알아본 결과 담낭씨는 오늘 입사 목록에 없어요"




대학원 졸업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 회사 입사를 경험했지만, 오늘처럼 당황스러운 날은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각 회사의 입사 첫날은 모두 다 제각각의 특징이 있었다.


첫 S사의 입사는, 생각한 대로 매우 formal 했다.

S사에 다니는 그 누구도 그렇게 입지 않지만, 나는 입사 첫날이라는 이유로 세미 정장을 입었고,

인사팀의 통보에 따라, 

당일 입사하는 다른 경력직들과 함께 약간의 교육, 서류 작성들을 마친 후,

입사하게 될 조직의 부사장님, 임원 분들께 인사를 드린 후에서야

내가 일하게 될 파트에 합류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며 나의 입사를 도와주었고, 

이것이 대기업이구나라는 것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입사 첫날이었다.


두 번째 Q사의 입사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우선 Q사의 경우 미국으로의 입사였지만 당장 미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Q사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도 없었다. 

Q사에서 준비한 노트북은 이미 나의 집으로 배송이 되었고, 

사무실에 입출문 할 수 있는 배지만 수령하고 나면, 굳이 회사로 나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Q사 한국 지사에 있는 직원들도, 어차피 떠날 사람인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으로 적을 옮긴 후의 첫 출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사팀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냥 알아서 혼자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팀원들에게 인사를 했고, 그것이 첫날의 전부였다.

S사 시절 입사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조촐하고 간단한 수준이었다.


이미 한번 Q사의 입사를 경험해서였을까.

A사로 입사하는 당일에도 나는 큰 부담 없이 회사를 방문했다.

그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안내사항도 없었지만, 미국 회사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내 이름이 입사 목록에 없다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금 더 조사를 마친 직원은 나에게, 내 입사일은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았던 나는 나를 담당했던 HR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왜 이런 미스매치가 일어났는지 알 게 되었다.


나처럼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미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워킹 비자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위해 Q사에서 A사로 워킹 비자 전환과정을 거쳐야 했고, 최종으로 승인이 났다.

승인 후에, 변호사는 해당 실제 문서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당시에 샌디에고에서 산호세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산호세에서 집을 구한 후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이전에 HR이 입사일이라고 말해줬던 그날에 회사에 당당히 찾아갔고,

내 첫 입사를 담당하던 HR은 변호사로부터 내가 아직 그 문서를 받지 않았다고 전달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언가 지연되고 있다고 생각하여 입사일을 임의로 일주일 늦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 문서가 입사 첫날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지극히 미국 스러운 일 처리 덕분에 나는 입사하기로 한 그날 입사를 못하게 되었고,

매니저는 차라리 그러면 모든 이사 일정을 다 마무리하고 오라며 입사일을 2주 뒤로 미뤄 주었다.


덕분에 얼렁뚱땅 휴가가 생겨서 기분은 좋았지만,

뭐랄까 처음 내가 명단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이것도 아마 (신분 없는 자의) 미국 생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P.S

실제로 모든 절차가 완료되고 나자 공식적인 입사 안내 메일을 받았다..

지금 보면 당연한 건데 왜 이런 절차가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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