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나와보니 수백만 배 더 느껴지는 감정
Q사를 퇴사하며 남긴 작별인사 글에 이런 말을 적었다.
'The world is small, and I am sure our path will cross again'
보통 새롭게 알게 된 누군가가 알고 보니 나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세상 참 좁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 살 때에도 종종 그런 일들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이러한 일을 겪게 되니, 아무래도 좀 더 그 의미가 부각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은 조그마한 우연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그런 의미들을 쌓아가면서 삶을 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경험들은 엄청나게 소중하고, 재미있고, 유쾌하다.
보통은 같은 업계에 있으면 쉽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우연히 박사과정 시절 학회에서 만난 분이, 알고 보니 S사의 내 조직의 전 파트장님이라던지,
내가 S사 시절 우리 팀을 도와줬던 vendor 사의 엔지니어들을 Q사에서 만나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던지,
새롭게 A사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나의 지인의 지인도 A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서로 알게 된다던지,
반도체 분야,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회로 설계 등 몇 가지 키워드만 잘 조합하면
세상이 좁다는 걸 쉽게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로, 나의 퇴사 작별인사에도 그렇게 마무리했었다.
특히 이직이 잦고,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이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연결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지만, 세상은 좁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조금 더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Q사로 이직하게 되면서, 나는 한국 blind 앱에 미국 이직으로의 고민 글을 올렸었고,
그 글을 읽은 미국 Q사에서 일하는 분과 알게 되어 잠깐 연락을 취했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그분을 뵙고 그분 아래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바로 내 초등학교 동창이고, 나와 같은 학부를 졸업한 친구였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정말로 세상이 좁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산호세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집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이 NVIDIA를 다니는 DFT 엔지니어가 아닌가.
내가 전공한 DFT 분야를 현재 현업에서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도 신기한데,
그 사람이 내 새로운 집의 집주인이고,
내가 NVIDIA에 DFT role로 면접 봤던 팀에서 일을 했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했다.
어쩌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수많은 우연들 사이에서 나와 관련된 무언가 들만 콕 콕 집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하나하나의 우연은 너무나 신비롭고 즐겁다.
어쩌면 나는 이런 순간을 더 만들어 내기 위해 열심히 브런치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작은 우연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인연이 주는 강력한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