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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May 01. 2024

경력직, 전략적으로 새로운 회사 적응 중입니다

AMD 입사 한 달 차 일기

어쩌다 보니 AMD에 입사한 후로 벌써 한 달 여가 지나가고 있다.


별의별 일들이 많았지만,

이제 하루 출근이 어느 정도 루틴이 잡힌 걸로 보면 스스로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https://brunch.co.kr/@damnang2/120


아마 경력직으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도 이번 새로운 회사로의 출근에 대한 마음가짐은 매우 특별하고 남달랐다.


이전 회사에서 아쉬웠던 내 모습들을 모두 날려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좋은 첫인상으로 새 회사에서 잘 시작하고 싶은 마음.

너무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초연하게 내려놓기에 나는 아직 욕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나름의 새로운 회사 적응 전략(?)이라는 걸 준비해 보았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지금까지 삼성과 퀄컴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 그리고 아쉬웠던 점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회사에 어떤 애티튜드로 어떻게 회사에 적응할 지에 대한 나름의 각오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전 회사인 퀄컴에서 보다는 더 잘 적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그 '전략'으로 어떻게 AMD라는 회사에서 적응하고 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대략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1. 나는 전문가다 마음속으로 수 만 번 되뇌기

지금 돌이켜 보면, 이전 회사인 퀄컴에 입사했을 때에는 나 스스로가 뭔가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인생 처음으로 완전히 영어로만 일을 해야 하는 환경에 처음 놓이기도 했고,

맡았던 일이 박사 시절과 삼성 시절에 일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일이었기에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조직에서 나는 가장 직급이 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특성상 '겸손'이나 '겸양'으로 표현되는 그 이상한 방어기제가 계속해서 발동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항상 입버릇처럼

"이 분야는 제가 처음 하는 분야라서.." 혹은 "제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서.."

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이미 나 스스로를 그렇게 낮게 평가하고 내가 부족하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그 누가 나를 일 잘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해 주었을까 싶다.


그래서 새로운 회사에서는 나의 태도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AMD에 합류하게 된 새로운 조직 역시 내가 배우고 알아야 할 내용은 정말 많고 모르는 내용 투성이지만,

그 두려운 감정을 모두에게 보여주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 100이라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걸 전부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내가 아는 내용 30을 더 강조하고, 내가 모르는 내용은 5 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기 위한 일환으로, 사람들과의 첫 만남 과정에서 나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하지만 프로답게 나를 소개하기 위한 나름의 문장을 열심히 준비해서 갔다.


"나는 박사 시절 DFT와 DFD를 전공하고, 삼성과 퀄컴에서 Logic, Memory Diagnosis 분야, 그리고 수율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 이 팀에 합류하게 되어 기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설레네요.

현재 이 팀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잘 배워서,

내가 가진 전문 지식과 함께 이 팀에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기여(contribute)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첫 번째 (적어도 두 번째) 회의 시간에 무조건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발표를 하자

새로운 회사로 입사 후에 내가 꼭 하려고 했던 것은,

첫 번째 팀 회의 때 무조건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아주 짧더라도) 내 주도하에 미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퀄컴 당시 매니저에게 항상 들었던 피드백은 회의에서 내 태도가 수동적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proactive 하게 해야지!' 외치던 나도

막상 그런 피드백을 듣고 나면 오히려 스스로가 더 위축이 되어서 점점 더 수동적이 되곤 했는데,

새로운 곳에서의 나는 이것을 꼭 깨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sr.director가 참석하는 첫 팀 회의날 가볍게 한 장 짜리 발표자료를 준비했다.

이 팀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 나 스스로 이해해서 그려낸 flowchart였고,

그중에서 궁금한 부분과 개선할 점이 있는지에 대한 토론을 짧게나마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개선점은 '자동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마침 이 자동화에 대한 고민은 이미 이 팀에서 어느 정도 인지가 되어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대략 10분 정도를 이 내용으로 함께 토론할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내가 발표를 준비해 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미팅의 처음 시작을 나의 주도로 이끌고 나니,

그 이후 다른 주제에서도 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첫 미팅이 끝나고, 매니저로부터 좋은 포인트를 잘 잡아서 잘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가 준비했던 나름의 '전략(?)'이 그래도 어느 정도 먹혔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3. 내 상사, 그리고 그 위의 상사까지 모두 친해지려 노력하자

퀄컴 근무 당시, 내 팀의 대장, sr.director 직급의 R은 이미 퀄컴에서 빡센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런 소문들 때문인지, 그냥 내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R과 별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니 그것이 가장 후회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상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모토이다.

그런데 내 상사를 위한다는 건, 결국 내 상사가 팀의 대장인 내 상사의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팀의 대장대해 내가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보통 director / sr.director 직급인 팀의 대장들은,

나나 내 상사가 보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 같은 엔지니어 직급이 진행하는 업무의 당위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힘과 안목을 지난 사람들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지금 새로운 회사의 새로운 나의 팀의 대장과 좀 더 자주 소통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아침, 가볍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현재 당신이 가진 고민이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씩 물어보기로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방법은 유효했다.


그날도 단순히 우리 팀 대장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내 자리로 찾아와 그가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담낭씨, 최근에 우리 제품 'M'에 HBM(High Bandwidth Memory)이 다수 들어가는 것 알지요? 혹시 이것 관련해서 기술적인 부분 A, B, C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물론 나는  순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대답을 한 후,

혹시 추가적으로 알게 되는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때마침, HBM spec쪽 관련한 JEDEC 문서를 찾게 되어 대략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이를 정리해서 팀 대장에게 메일로 간략하게 전달해 주었다.

다행히도 그 정보가 우리 팀 대장이 궁금해하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었고,

그렇게 그 후로도 가끔씩 따로 1-on-1로 기술적인 내용을 함께 얘기하게 되었다.


단 한 번도, sr.director가 나에게 직접 어떤 기술적인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이 없었던 이전 회사와 달리,

이곳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이 팀의 대장과 기술적 논의를 하고 있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 펼쳐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내가 바라고 원했던 그림대로 말이다.




이직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꾼 것이 정말로 잘 동작을 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전보다 조금 더 높은 직급으로 입사하게 되면서 내 스스로 자신감이 생겨서였을까.


이제 앞으로 가야 할 일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이런 순간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언젠가는 정말 의도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의연하고 프로다운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와 설렘으로 오늘도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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