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낭이 May 17. 2024

결혼 축의금으로 100만 원을 냈다

내 친구 선하 이야기

나는 원래 친구 관계가 넓지 못하다.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이미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오래고,

지금 연락을 (그것도 아주 가끔) 하고 지내는 대학 시절 친구도 손안에 꼽는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 가장 친한 친구, 선하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선하는 본명이 아니고 그의 필명이다. 그는 이제 어엿한 프로 웹 소설가가 되었다)


처음 이 친구와 친해진 계기는 다른 누군가들 처럼 단순하고 평범했다.

우리는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입학했고,

재수생이었다는 같은 동질감, 같은 게임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이너 한 음악 취향이 서로 같았다.

(평범한 사람은 잘 모르는 데프콘의 '두근두근 레이싱'이라는 노래를 어떻게 친구도 외우고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남녀 비율이 절망적이었던 전기전자 과였던 우리는,

여자가 많다는 선배의 회유에 꼬여 중앙 영어 동아리도 같이 가입했고,

(아쉽게도 그 해 동아리 신입생은 나와 선하를 포함한 같은 목적의 전기전자과 남학생 4명이었다)


매일같이 노래방을 다녔고, 서로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기 바빴다.

둘 다 매일같이 술만 먹고 노느라 공부는 절대로 안 했기 때문에,

툭하면 학고를 맞고 "하하 우린 역시 망했어"를 외치며,

그래도 서로를 보며 자신의 한심함을 위로하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시절 거의 매일을 같이 붙어 다녔고, 그런 우리를 다른 친구들은 부부라고 불렀다.


그랬던 우리도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간의 만남의 빈도를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자연스레 그렇게 우리를 만들었다.

그렇게나 공통점이 많던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가는 방향이 자연스럽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둘 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전기전자 전공이었지만 나는 결국에 전공을 살려 미국에서 엔지니어가 되었고,

공대생 답지 않게 글을 잘 쓰던 선하는 대학교 입학 때부터 방송사 pd를 꿈꿔왔지만,

현재는 네이버에서 웹 소설을 쓰고 있으니,

어떻게 이렇게 서로가 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는지도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만나는 빈도는 잦아졌지만, 만남의 깊이는 항상 그대로였다.

매일 만나던 우리가 2-3년에 한 번씩 만나도,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서로의 의지가 되곤 했다.


여하튼 그런 선하가, 10년이 넘는 장기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고,

한국에 가지 못하는 나는 미안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그에게 축의금 백만 원을 계좌 이체 했다.



나에게 선하의 존재는 이제 친구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 그리운 20대 그 자체이다.

20대 때 그는 항상 나의 옆에서 나의 슬픔과 기쁨을 같이 향유해 주었고,

30대부터는 그 존재만으로 나의 추억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 백만 원이라는 돈은,

내 지나가버린 20대를 그리는 일종의 추모비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20대 여 안녕, 같이 또 다가오는 40대를 맞이하자꾸나.



P.S

내 친구 선하가 최근 연재한 웹 소설입니다.

무협고수인 천마술사가 이 세계로 환생해서 마술사로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설정의 이야기인데

중간에 저도 (이름만 좀 바뀌어서) 출연합니다 ㅎㅎ


무협소설이나 인터넷 방송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https://series.naver.com/novel/detail.series?productNo=10078670


매거진의 이전글 동종 업계 이직은 죄악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