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틈 날 때마다 한 번씩 링크드인을 확인하곤 한다.
관련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지만,
때로는 내 분야의 현재 미국 job market을 확인하는 용도도 있고,
또 가끔은 예상치 못하게 특정 빅테크 HR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씩 링크드인을 확인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전 직장, Q, 에서의 직장 동료 S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게 아닌가.
"Hi 담낭, How are you doing?"
오랜만에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있던 팀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해서
반갑게 답장을 하려던 찰나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 혹시 네가 일하는 팀에 job opening 기회가 있어?"
나는 그 메시지에 순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가 이런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 친구는 전 직장에서 에이스인 친구였다.
나와 같은 시점에 미국에서 박사를 받았고, 박사를 받자마자 Q에 입사해서 엄청나게 인정을 받던 친구.
내가 Q에 있던 시절,
나의 매니저는 툭하면 이 친구를 들먹이며 이 친구의 잘하는 점을 나에게 상기시켰고,
그때마다 나는 약간은 위축되고, 또 약간은 부러운 마음 (엄밀하게는 시샘 비슷한)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기자마자 본인의 나라인 인도로 돌아갔기 때문에,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일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인도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팀에 있는 여러 엔지니어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정받는 능력을 과시하듯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승진을 했다.
2년 만에 2단계 진급을 했으니, 아마 내가 아는 한 가장 빠른 진급이었을 것이다.
내가 퇴사하던 시점에도 나는 나 스스로 이 친구를 정말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자신의 힘으로 본인의 조직에서 그렇게 빠른 진급을 해냈지만,
어쨌든 나 역시 '이직'의 힘을 빌려서 그 친구만큼 빠른 진급을 했으니..
야! 비겼어!
라고 혼자 속으로 얘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심, 내 링크드인에 올린 '나의 이직' 상태 업데이트를 그 친구가 보고,
나랑 비슷한 마음의 1%라도 느끼면 좋겠다는 찐따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친구는 그 정도로 부럽고, 일 잘하는 친구였다.
근데, 그랬던 이 친구가 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가 너무나 알고 싶었다.
그토록 잘 나가던 친구가 그 팀에서 일적으로 트러블을 겪을 리는 없을 거고...
예전 팀에 혹시 문제라도 생긴 걸까?
인도 쪽 매니저와 불화가 있었나?
내년에 Q에서 layoff가 또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는 rumor가 있던데 그것 때문일까?
묻고 싶은 질문이 산더미 같았지만, 평범하게 답변했다.
"응 잘 지내지, 우리 예전 팀에서 일하는 거 어때? 별일 없지?"
"우선 내가 알고 있는 job opening 기회는 아직 없어. 나중에 생기면 알려줄게."
그러자 그 친구는 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답변을 시작했다.
"응 우리 팀이 어떤지는 너도 이미 알잖아"
"우리 팀이 점점 작아지고 있고, 그래서 일이 더 힘들지고 있어"
"혹시 인도 쪽에는 네가 일하고 있는 A사의 job opening 기회가 있어?"
나에게 그 친구의 이미지는 잘나고, 일 잘하는, 그야말로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않는 똘똘한 이미지였기에
(물론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낸 적이 없기에 그저 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든 그 친구의 이미지였지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상황이었다.
그저 그 친구의 뉘앙스에서 뭔가 그 친구가 현재 쉽지 않은 일들을 겪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응 인도 쪽도 아직은 딱히 별 opening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 알게 되면 알려줄게"
그리고, 참지 못한 채 물어본 다음질문.
"혹시 너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는 거야?"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예전 팀의 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친구가 물어보는 이유가 본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주변 누군가를 위해 기회를 찾는 것일 수도 있기도 했고,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의 그 친구는, 예전 팀에서 잘 나가면 잘 나갔지,
절대로 이직 같은 걸 할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답을 했다.
"응 맞아.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어. 만약 알게 되면 알려줘"
사실 이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미국 회사에서 이런 식의 대화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구직 활동이며 혹시 모르는 좋은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여하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정이 들었던, 내가 몸담았던 조직.
마지 헤어진 전 여자친구 같은 느낌처럼,
잘 되어도 배 아프지만 잘 되지 않아도 속상한 그런 오묘한 느낌이 아직도 있다.
내 첫 직장 S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새 뉴스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안 좋은 소식들, 개인적으로 받는 연락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나를 뒤덮곤 한다.
나는 그곳을 나왔기에 더 이상 그곳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그곳이 잘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줘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잘 되지 않으면 내 선택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친구에게 그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나 역시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나보다 잘 나가던 친구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으니 나의 선택은 옳았던 것인가.
그럼에도 내가 몸담았던 조직이 약해지고 있으니 슬퍼해야 하는가.
참으로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다.
이 메시지 하나에 촌스럽게 별의별 생각을 하는 나를 보니,
나는 아직도 한국 물이 덜 빠진 미국 초보 회사원인 것 같다.
그래,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미국 회사 문화에 적응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