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낭이 Nov 12. 2024

정리해고 당했던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https://brunch.co.kr/@damnang2/141


어쩌다 보니 시리즈 처럼 되었지만,

희한하게도 최근에 전 직장, Q에서 만났던 인연들로부터 연락이 계속 오고 있다.


이번에 연락온 친구는,

공교롭게도 내가 Q 재직 시절, 바로 내 눈앞에서 레이오프 (정리해고)를 당했던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




2023년 10월,

나는 말로만 듣던 그 무섭다는 미국 회사의 레이오프를 직접 경험했다.


"미국 회사는 고용 안정성이 좋지 않아서, 언제든지 잘릴 수 있대!"

내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 정해졌을 때 주변에서 나에게 수없이도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코웃음 쳤었다.

'정작 미국도 안 가본 사람들이 어디서 들은 이야기로 괜히 나를 겁주려 하는 거 아냐?'

'나는 미국 가서도 잘할 거기 때문에 그런 걱정 따위 필요 없다고!'

'아무리 미국이 언제든 사람을 자른다지만, 날 고용하자마자 자를리는 없지!'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내가 미국에 도착하던 그 주에, Q는 이미 소규모 레이오프를 한차례 한 후였고, 

우리 팀에서 2명이 그렇게 나가게 되었다.


심지어, 그 이후에 Q의 CEO는 전사 미팅에서

본격적으로 대규모 레이오프를 시행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말대로 2023년 10월에 본사에서만 1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레이오프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레이오프 대상자 중에는,

내가 미국에 온 이후로 나를 챙겨주던 주니어 엔지니어 2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이오프 발표가 있던 날,

그들은 덤덤하게 웃으며 나에게 본인들이 레이오프 대상자임을 말했고,

나는 그렇게 갑자기 그들과 이별해야 했다.


정말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무섭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https://brunch.co.kr/@damnang2/101


그런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덤덤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과의 이별에 대해 속상해하고, 아쉬워했던 사실이 민망할 만큼이나 

빠르게 새로운 직장 (I사)으로 이직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우리 팀 sr.director가 그들을 레이오프 하면서, 

본인의 인맥을 이용해서 그들이 다른 회사들에 지원할 수 있도록 referral을 해준 것이었다.


미국이 인맥사회여서였는지, 그들이 정말 좋은 인재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여하튼 그들은 그렇게 쉽게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내가 들었던, 그리고 미국 와서 실제 느꼈던, 레이오프에 대한 두려웠던 감정과 

실제 레이오프 당한 그들의 모습은 사뭇 다른 온도였다.

그리고 어쨌든, 그들이 새로운 회사에서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은 나에게 분명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아마 반도체 업황에 관련된 뉴스를 보시는 분이라면 이쯤에서 '아.....'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


그들이 Q사의 레이오프 후에 이직했던 I사 역시 올해 2024년에, 대규모 레이오프를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인 10월에 말이다.


그들이 이직한 후로 별다른 교류를 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자세한 소식은 몰랐지만,

그냥 한 번씩 I사의 뉴스를 볼 때마다 그들이 생각났다.


'그 친구들이 괜찮아야 할 텐데'


그리고 어제, 그중 명에게서 문자가 왔다. 


"담낭아 잘 지내? 산호세는 어때?"

"나 이번에 N사로 이직했어, 내가 산호세 가게 되면 보자!"





그 친구가 이번 I사에서도 레이오프를 당했는지,

아니면 이번에는 레이오프 당하기 전부터 잘 준비를 해서 레이오프 발표 전에 N사로 이직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이 친구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한국에서 나에게 막연한 겁(?)을 주던, 미국 경험 없는 내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레이오프가 참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어쨌든 미국은 참으로 역동적인 곳이다.

어떤 면에서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두려운 곳이기도 하면서,

또 어떤 면에서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설레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걱정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내 몸값을 올리기 위해 나의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지 끊임없는 걱정을 해야 하는 곳.


이 친구가 이곳 실리콘밸리로 오면, 그간 있었던 여러 일들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다.

잠깐이지만 나와 함께 인연을 맺었던 친구가 다시 이 지역으로 온다는 건 너무나 설레는 일이다.


혹시 아는가,

이 친구가 또 나의 새로운 커리어 항로의 디딤돌이 되어 줄지.

매거진의 이전글 일 잘하던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