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어라

by 채선후

이 이름은 번뇌를 지닌 다섯 근간에서의 명칭이며 개념이며 습관적인 표현이다. 번뇌를 지닌 다섯 근간이 바로 환술로 지어낸 사람이라고 여겨야만 한다. (팔천송 반야경 중에서)



인간은 땅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고 죽는 것 역시 땅에서 나서 땅으로 진다.

그래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일 것이다. 그 땅이 몸이 태어난 곳이라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태어난 곳의 땅은 어미가 되어 자신이 낳은 몸을 감싸 안아 준다. 몸을 받아 태어난 자는 땅을 밟고 있을 때는 땅의 품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보이는 것이 앞으로 보일 것이고, 지금 듣는 것이 앞으로 들릴 것이라고, 내일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땅을 벗어나는 순간 땅은 우리에게 무언의 경고를 남겨 두고 있다.

“내 품을 벗어난 자! 앞으로 너는 시간을 거스르는 대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스르는 시간이 너를 가르쳐 줄 것이다!”

거스르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찾아야 되는 것은 땅을 벗어난 자의 몫이다.

여기 그 땅을 벗어난 자가 한 사람 있다. 그 사람 이름은 박병철이다. 박병철! 그는 남편 고향 친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큰아이 돌 무렵이었다. 작은 키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시원시원해 보였었다. 특히 눈은 큰 쌍꺼풀로 서글서글했으며, 커다랗고 검은 눈빛은 잔잔한 것이 아름다웠다. 키만 조금 더 컸으면 여자들에게 꽤나 인기 많을 인상이었다.

늘 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은 다른 친구들은 아이 돌 선물로 반지와 돈을 주었는데 유일하게 아이 옷을 속옷, 겉옷은 물론이고 모자부터 신발까지 모두 다 구색을 맞춰 사 준 사람이었다. 그것도 결혼도 안한 총각이 아이 돌 옷을 그렇게 사 다 주어서 내 눈에 특별히 띄었었다. 사람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좋지 않은 머리지만 그 친구 이름만큼은 늘 잊지 않았었다. 그를 못 본 것은 십 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남편을 통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대충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온 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온다는 것이 좋은 일로 놀러 오는 것은 아니었다.

진도 시댁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문상차 남편과 가기 위해 오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르신은 다름 아닌 병철씨 큰아버지셨다. 병철씨 부모님께서는 예닐곱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큰집에서 자식처럼 키웠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님과 다를 바 없는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병철씨는 상주인 셈이었다.

그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간혹 남편에게 듣는 소식은 좋지 않았었다. 처음 결혼하고 들은 것은 병철씨는 중학교를 중퇴했어도 손기술이 좋아 일찍 기술을 익혀 돈을 많이 받는 공장장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하기 몇 해 전 병철씨가 여자를 만나 동거를 했는데 그 여자가 모아 둔 재산을 다 가지고 도망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큰애 돌 옷을 선물로 사들고 왔을 때는 재산을 잃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을 때라 했다. 그 뒤 몇 번 우리 집에 놀러오곤 했었는데 한 번은 집에서 저녁을 먹고 막걸리와 소주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화장실 간 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손을 덥썩 잡더니

“제수씨! 저 놈은 집 떠나 외로운 놈잉께 잘 좀 해 주쇼~잉!”

‘아니! 이 인간이! 남편이 없는데서 추태를!’

내 손목을 꽉 잡으며 꼭 안을 기세였다. 억양이 강한 전라도 사투리에다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너무 무서워 놀랐었다. 그 뒤로 나는 병철씨는 남편 친구가 아니라 치한처럼 생각했다. 혹시 남편이 병철씨를 싫어할까 싶어 이런 일은 말하지 않았었다. 단지 병철씨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말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었다. 그 뒤로 남편은 밖에서 병철씨를 만났어도 나는 한 번도 보지 않았었다. 몇 해가 지나고 추석 명절 때 진도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남편의 고향 여자 친구들을 만났었다. 병철씨는 너무 징그럽다고 말했더니 남편의 여자 친구들은 별 뜻 없이 그냥 장난 식으로 그럴 수 있으니까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진도 시골에서는 한동네에서 오래도록 지낸 친구들끼리 친한 정을 그렇게 표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순간 나는 병철씨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오해를 했구나!’

그 동안 어린 나이에 고향 떠나 고생하면서 번 돈도 다 잃고, 위로 받고 싶었던 고향 친구를 만나고 싶었는데도 오지도 못하게 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많이 힘들었을 때 따뜻한 밥도 해 주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후회했다.

그 후 들은 소식은 어떤 나이 많은 여자와 살고, 일자리도 시원치 않다고 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서 남편도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 병철씨가 몇 년 만에 연락이 되어 우리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초상집에 가는 분위기라 맛있는 저녁상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반찬에 대충 상을 차리고 빨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병철씨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아니! 이럴 수가! 길거리에 잠을 자는 노숙자도 이 보다 나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시뻘건 것이 퉁퉁 부었고, 그 크고 아름다웠던 눈은 흐릿했다. 세수만 했을 뿐이지 상거지 중의 상거지 꼴이었다. 남편은 술에 찌든 알콜 중독의 얼굴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화난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있는 힘껏 삿대질 하면서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 꼴이 뭐냐고?”

나는 병철씨에게 따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병철씨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세상을 향해 따지고 싶었다. 이 사람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소리쳤다.

그 다음날 병철씨는 진도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잘 되었다 싶었다. 진도에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도 제법 있다고 했다. 제발 땅의 품에서 살길 바란다. 그 품에 안기며 마음 편히 살길 바라고, 또 바란다.


땅을 벗어난 자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한다.

땅을 벗어난 시간 동안 살아내는 자는 많은 것을 잃는다. 잃어버린 것이 곧 땅이 주는 가르침일 것이다. 그 가르침 속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또 만만치 않은 시간이 길수록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시간은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난 후 다시 그 땅을 찾고 싶은 이유는 그 곳에 머물면서 설익은 알맹이를 익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알맹이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하지만 껍데기를 벗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누구는 껍데기를 잘 벗겨낼 것이고, 누구는 껍데기를 더 두껍게 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살아내는 자의 몫이다. 살아낸 자는 알고 있다. 자신을 낳아 준 땅은 껍데기를 벗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나도 껍데기를 아직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벗으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향 땅에서 제발 마음 편히 살길! 그 땅을 밟으면서 자신의 두터운 껍데기를 벗겨내길 간절히 기도 한다. 병철씨! 제발 그 지저분한 껍데기 좀 벗어던져 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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