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에 흔들린 꽃들 Mar 05. 2023

때론 조건 없는 위로가 필요해

프리허그는 어떨까

프리허그는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한 남성에 의해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고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것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내게 이런 조건 없는 위로는 건네는 일도 받는 일도 어려운 것 같다. 나는 포옹은커녕 악수도 상대가 먼저 청할 때만 수락하는 스스로를 선천적으로 위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랜 친구가 술에 취해 전화로 내게 말했다. 힘들 때 항상 좋은 말을 해줬던 것이 고맙다고. 내가 친구들을 대할 때는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말자는 원칙만 존재했을 뿐, 좋은 말을 해주자는 캠페인 따위를 펼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아서 되물으니, 친구는 몇 가지 일화를 예로 들어가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술주정을 부리는 건 친구였고 맨정신은 나였는데, 그의 기억이 나보다 또렷한 듯했다. 친구가 전화너머로 되감는 먼 과거 속에서 예전에 그가 처했던 어려운 상황들은 어렴풋이 생각이 났지만, 내가 그에게 건넸던 위로의 말들은 마치 끊긴 필름처럼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위로도 건네며 살아온 것일까?


내 친구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듯 나의 이십 대는 온통 위로받을 일로 가득했다.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을 벗어나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기쁨만 가득 찬 해방의 공간이 아니었다.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숲도 그 속은 생존경쟁이 치열하듯, 앳된 어른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나는 한없이 나약한 구성원일 뿐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뒷모습들을 목격했다. 멀어져 가는 꿈의 뒷모습, 사라져 가는 낭만의 뒷모습,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은 건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위로를 통해 이런 불안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면접에서 떨어했을 때, 부모님을 잃었을 때,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위로의 말뿐이었지만, 나는 그 진심이 담긴 몇 마디로부터 다시 힘을 얻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끼리 놀다가 난 상처에 입김을 불듯, 치유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라도 분명 아픔은 덜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행동이었다.


흔들렸던 이십 대는 끝났어도 나는 여전히 많은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꿈은 혜성의 꼬리가 되어 사라졌고, 낭만은 깊은 밤처럼 끝났으며, 떠나간 사람이 남은 사람보다 훨씬 많아졌다. 나는 이제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히지 않을 만큼 성숙해졌어도, 나는 지금도 상처를 받는다. 사실 가장으로서 생존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지금, 상처입을 일은 되려 더 많아졌다. 그래서 때론 조건 없는 위로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안아주는 프리허그 같은 위로 말이다. 그때처럼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심이 담긴 위로를 주고받기엔 나도 내 주변인들도 이제는 너무 성숙해져 버린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혈연관계의 파손위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