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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Mar 03. 2023

“삶이 잠시 나를 기다려줬으면…”

부모님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존재하는 자식이기에...

아침에 산에 갔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산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어떤 분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것이다. 어머니가 노년이 되어 십수 년 동안 겨울만 되면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어깨 부분에 빨간색이 들어간 파란색 겨울 점퍼를 입은 분을 보게 된 것이다. 가까워져서 보니 남자분이었고, 점퍼도 어머니가 입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저 그 짧은 순간에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이었을 뿐이다.


원래 추위를 타지 않는 어머니지만 한겨울에도 얄팍한 점퍼를 입는 게 마음에 걸려 부피감은 없지만 따뜻한 다운 패딩을 사드리기도 했는데 그 점퍼에 꽂힌 어머니는 새 패딩을 몇 번 입다가도 다시 낡은 점퍼를 입으셨다. 어머니의 애정템이라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상하지 않게 바람은 통하게 가끔 꺼내봐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낡은 점퍼와 몇 가지 유품, 그게 어머니가 남긴 흔적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물론 부모님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존재하는 자식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백 년을 채 살지 못한다. 정말 찰나의 순간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빛나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면 세상이 그를 기억할 것이고,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가면 그가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긴 살아있다 해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 존재감이 없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적어도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겐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부모님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으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고운 심성의 부모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연히 발견한 아주 오래전 생일에 부모님에게 받은 편지를 꺼내보고 얼마나 찡했는지 모른다. 부모님 속 썩이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난 자식도 아니었는데도 나를 대견해하셨다니...


어제 TV를 보다가 중년의 출연자가 그냥 슥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가슴에 훅 들어온 말이 있었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한 달도 휙 지나가버리는데 때로는 “삶이 잠시 나를 기다려줬으면”할 때가 있다고.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가는지 느끼는 나이가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삶이 나를 기다려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내가 삶에 쫓기지 않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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