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진짜였다니…
학창 시절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제일 듣기 싫은 말이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는 게 제일 쉬운 일이야.”였다. 모든 학업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는 게 헛말이 아니었음을 시시 때때로 실감하고 있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행운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고, 둘째, 돈 버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나는 행운아여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해서 다행이다 싶기는 했어도 일자리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일을 쉬고 있다가 다시 시작하려니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전과 변함이 없지만, 타인이 보는 지금의 나는 그냥 경력단절 중년일 뿐이다. 그나마 1년 동안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고 공감해 줘서 스스로 용기도 얻고,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지만 아무런 이벤트가 없었다면 새로운 직장을 찾는데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일에 이제 막 뛰어들었다. 그동안의 경력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없지만, 경력의 연계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평가받지 못한 새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이렇게 쉽게 취직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예전에 받았던 연봉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
부모님의 모든 지원을 받으면서 가방 메고 학교 다니던 12년의 세월이 인생에서 가장 속 편한 시기였음을 이제야 절절히 깨닫는다. 직장을 다니면서 엄마에게 회사 대표의 험담을 털어놓을 때마다 엄마는 맞장구도 쳐주고, 나보다 더 화도 내주셨지만 이야기 말미에는 항상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얘, 그래도 그 대표 좋은 사람이야, 그 많은 사람들 월급 꼬박꼬박 주고, 일자리 주는 사람 아니냐.” 그럼 나는 맥이 조금 빠지긴 해도 “그건 그래.”라고 웃으면서 험담을 끝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돈벌이의 어려움에 대해 위로하면서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오기가 어디 쉽냐?”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된다면 이제 어른의 세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동안의 경력이 리셋되고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지만 그런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 나는 생계를 꾸려가려면 일이 필요하고, 마침 일이 주어졌다. 더 이상 무얼 더 재고 따지고 하겠는가.
*메인 이미지. 영화 <라자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