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제사
추석 전날이 엄마 기일이다. 어느새 엄마와 이별한 지 4년이나 되었다. 혼자 제사를 모시다 보니 점점 단출해지는 게 섭섭해서 올해는 단골 꽃집에서 예쁘게 핀 달리아를 샀다. 꽃집 사장님이 수레국화를 더 건네주면서 제사에 꽃을 다 사고 효도하신다고 인사말을 건네는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상을 진수성찬으로 차리면 뭐 하고, 꽃다발을 준비하면 뭐 하겠는가 싶어서다.
기본적으로 유물론자요 무신론자지만 훨씬 더 강력한 유물론자인 내 형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제사나 명절 음식 준비하면 다 소용없고 부질없다면서 말린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아쉬워서 혼자 간소하게라도 차리곤 하는데 올해는 그 마저도 자신 없어서 꽃이라도 준비한 것이다.
정말 효성이 지극하고 영혼을 믿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진지 올리는 마음으로 제사를 모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일을 그냥 넘어가기는 마음에 걸리고,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고로 제사로 인해 불화가 있다면 지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회한에 불과하지 않을까.
제사 모시고 음식 장만을 하는 문제로 형제자매끼리 다툼을 벌이는 것을 본다면 기일이라고 찾아오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마음 편히 제사음식을 드실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오래되었다는 꽃집 사장님은 기일에 좋아하시던 커피 한잔과 향초를 피우고 마음속 고민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4년이 되었지만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펑펑 울기만 했는데 얼마나 지나면 울지 않고 기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싶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순전히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집어온 리사 리드센의 소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을 읽다가 눈물바람을 하였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요양시설에 보내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남자의 마지막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 엄마와의 마지막 1년이 떠올라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읽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닳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학창 시절 송강 정철(1536~1593)의 시조를 배울 때에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구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뼛속까지 시리고 아프게 실감하는 말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식장 복도에 늘어선 근조화환과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제사상이 무슨 소용일까. 부모님이 아직 옆에 계시다면 좋아하시는 음식도 입에 넣어드리고, 시간 보내면서 이야기 들어드리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차고 넘치도록 하면서 웃게 해 드리는 것이 훨씬 뜻깊고 가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