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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와 범죄도시

해외생활은 각자도생 各自圖生임을 기억하자.

by Rosary

대사가 국가의 명령을 받아 머물러 있는 나라에서 국가의 일을 처리하는 기관이 대사관(大使館)의 사전적 의미이다. 해외에서 곤란한 일을 겪어 대사관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대사업무에 만족하기보다 대사관의 존재 이유 자체에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운 좋게도(?) 첫 번째 해외여행에서 대사관이 자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을 체감하면서 그 후 해외 체류 시 각자도생(各自圖生)만이 살 길이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주의력이 생겨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었다.


20여 년 전 장기배낭여행의 첫 도착지 태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캄보디아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태국에서 캄보디아 국경까지 가는 길에 택시를 탄 것이 실수였다. 생전 처음 혼자 해외에 나가서 공항에서 입국심사하고 짐 찾는 과정이 생소해서 살짝 정신이 없는 와중에 택시를 타고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했는데 여권이 사라진 것이다. 공항에서 택시 탄 게 동선의 전부였는데 여권이 증발한 것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방콕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여행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외교부로 전화를 걸어 태국 대사관 주소를 얻었다. 이때부터 환장쇼가 시작이었다. 대사관이 이전을 한 것이다.


어찌어찌 이전한 대사관을 찾았더니 현지 경찰에 여권분실신고를 내야 재발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으니 대사관 현지 직원(태국인)이 주소 하나를 적어 주었다. 쪽지 하나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서 여권분실신고를 내고 신고증명서를 들고 다시 대사관에 돌아왔더니 현지에서 여권을 재발급받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귀국해서 재발급받는 게 낫다는 권유를 받았다. 그런데 국내 관공서에서 느껴본 적 없는 고압적이고 귀찮아하는 태도여서 불쾌하고 화가 났다. 임시 여행허가서를 가지고 방콕에서 몇 주 동안 기다리느니 귀국하는 편이 나은 게 사실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변의 위협도 전혀 없었고 그저 여권을 잃어버린 것에 불과했지만 국내에 있는 외교부나 주재 대사관이나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그 후 30여 개국을 여행하고, 6년의 싱가포르 생활 동안 늘 스스로 조심하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값진 교훈을 얻었다. 해외생활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해야지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신념이 확고해졌다.

cambodia.jpg 주 캄보대아 한국대사관 취업사기 피해 신고방법 안내문

최근 캄보디아에서 청년들의 납치, 감금 관련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캄보디아에서 취업 사기 후 감금을 당했다며 신고한 사례가 330건에 이른다고 하니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인다. 정부도 캄보디아에 경찰인력파견을 추진한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유적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가 언젠가부터 동남아시아 범죄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취업이 막막한 청년들이 해외취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십수 년 전의 나 역시 같은 입장이었기에 청년들의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취업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자리뿐 아니라 생활기반 자체를 해외에서 꾸려나가는 일은 취업보다 훨씬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일부 성공사례를 자신에게 투영해서 막연한 꿈을 키우기보다 현지사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어떤 일자리인지,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외취업과 체류는 자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강력한 각자도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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