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멘토>를 보고
요즘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책으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헝거게임 시리즈의 신작인 <헝거게임: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공포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 요즘 인기 영화 <서울의 봄> 등..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역시나 오늘도 시리즈 온의 무료 영화 목록을 살핀다. 그래, 최신작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기만 한다면야…(훌쩍)
- 영화 메멘토(Memento) 재미있는데, 너희가 이해 못 할 것 같아. 어때, 한 번 볼래?
무슨 내용이길래, 괜히 궁금해진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메멘토(Memento).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레너드는 10-15분이 지나면 그 사이의 기억을 잊는다. 사고 이후 가지게 된 병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사고 이전의 기억 또한 가지고 있다. 그의 삶의 목표는 단 하나인데,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것. 그는 복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용의자를 만나 단서를 찾는다. 하지만 결말은 반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결말은 이해했지만, 수많은 복선과 떡밥을 보려면 영화를 두 번은 더 봐야 할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인간은 이기적이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속인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인다. 이들의 선과 악을 가릴 수 있을까? 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통스럽고 버틸 수 없기에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결국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레너드. 레너드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 걸 알고 레너드를 이용해 결국 테디를 죽게 만든 나탈리. 레너드가 범인을 찾는데 도와주었지만 레너드의 기억 조작을 방관하고 레너드의 병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테디. 이들 중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이는 레너드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결국 기억을 지우고 왜곡한 그는 아마 평생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결국 테디를 죽였으니 그에게 진실을 알려줄 이도 더 이상 없다.
레너드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던 새미가 아내에게 인슐린 주사를 계속해서 주입하는 장면을 보는 당시에는 먹먹한 정도였는데 내용을 알고 다시 생각하니 눈물 날 것 같았다. 새미에겐 아내가 없었고, 인슐린 주사 사건은 레너드의 기억이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범인은 결국 그였던 것이다. 아니, 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슬픈 결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난 책이 하나 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책이다. 로맨스 장르의 책 때문에 우는 걸 들키면 안 되었기 때문에 방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었던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웃픈 책이다. 내가 선행성 기억 상실증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섭다. 세상의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고, 나 자신 또한 온전히 믿을 수 없겠지. 신뢰는 이들의 마음에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괜스레 기분이 우울해진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신뢰를 가질 수 없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내가 살아남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결국 그이는 그 기억을 잊을 테고,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겠지. 하지만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눈을 감았다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