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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Jul 12. 2024

잡생각

그냥 흘러가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24시간 내내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탄다고 생각했기에 초반엔 들뜨기도 하고 좋았는데, 계속 지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로서,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은 기숙사에서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룸메의 깊고 얕은 고민,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 긴 통화까지 다 이해하고 안아주기에 내 그릇은 너무 작았다. 작은 부탁 하나 거절을 못해 속으로 끙끙 앓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의 고민도 성심성의껏 들어주고 같이 속상해하던 내 안의 따뜻한 모습이 점차 사라져 감을 느낀다.


 나와 방을 같이 쓰는 친구는 누군가를 쉽게 믿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대해 인기가 많은 외향형이지만,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상대가 좋은 이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나에게 지속적으로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보이는 대로 바라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룸메는 나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면에 대해 말해줬다. 속으로는 룸메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그 말들을 다 믿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중립을 택했다. 내 선 안에 있는 이들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어느 날, 룸메가 나에게 냉정한 것 같다고 말하자 나는 내심 놀랐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냉정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내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조차도 한발 물러나 중립적으로 바라본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내 선 안의 소중한 이들이 아니라고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이 냉정한 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룸메가 얼마 전 나와 함께 얘기했던 한 남학생 얘기를 꺼냈다. 나는 그 친구와 몇 마디 대화해본 게 다였기에 무뚝뚝하지만 매너 있는 친구,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룸메는 시시각각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그냥 보이는 모습 그대로 보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완벽한 선 또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데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를 가지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기 때문에 중요해. “


 아. 그렇구나. 너는 좋은 사람들을 최대한 곁에 두고 싶었기에, 그래서 사람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에 비해 나는 곁에 별로 다른 누군가를 또 두고 싶지 않다. 지금 지내는 친구 두 명으로도 충분하니까. 단지 외향형과 내향형의 차이였음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는 룸메의 입장에선 중요한 얘기였지만,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완벽주의자와 덜렁이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룸메가 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뭘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선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 없는 것이 ’ 냉정‘한 것이라면, 냉정한 것이 그다지 안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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