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지 Aug 25. 2023

드라마 <꽃보다 남자>속 사랑의 형태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한다.

꽃보다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 유전자 속 2가지 욕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자립하고 싶고 능동적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싶은 욕구, 또 하나는 누군가의 구원으로 신분상승을 이루고 싶은 욕구 두 가지가 있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 분위기가 점차 확립되면서 사람들은 부와 명예, 사회적 희소가치를 가진 사람을 동경하며 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른 세계'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TV 드라마에서 서민인 <금잔디>가 부와 명예, 미모까지 다 갖춘 F4한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유대감이 끈끈해지는 모습을 볼 때 시청자들은 금잔디와 은연중에 합체되어 신분상승을 이룬 것처럼 대리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여 재벌가와 평범한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때 사람들은 짜릿하다. 재벌가 이야기는 이루고 싶은 신분상승의 꿈을 실현해 주고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금잔디를 구원하고 지켜줌으로써 구원받고 싶어 하는 욕구까지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잔디가 매우 수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구원받고 싶은 욕구의 이면에 더불어 자립하고 싶은 욕구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그 사이에서의 금잔디의 자립적 성향과 F4의 도움과 구원 사이 어디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내가 <꽃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안하무인 유아독존이었던 구준표가 금잔디를 만나고 나서 인격적인 성숙과 비롯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인간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부분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힘의 논리로 대하는 것,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 다른 사람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 세 가지 모두 인간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구준표는 심리적으로 매우 미성숙했던 것이다.​


만인에게 F4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힘의 논리에 의해 무력으로 다른 친구들을 제압하는 사람이다. 동경의 대상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다른 친구들은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위상이 추락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게 된다. F4의 학교폭력과 같은 만행들은 폭력으로 억압된 부유층 고교생들의 모습은 정의롭지도, 평화롭지도 않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전학생인 잔디는 자신의 친구의 사과를 받아주지도 않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며 핥으라고 협박하는 구준표에게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인물이다. 잔디는 현격한 경제적 차이에도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표현하며 권위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그런 잔디의 모습을 보며 준표는 반하게 된다, 현격한 경제적 차이에도 잘못 된 것은 잘못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에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금잔디는 경제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음에도 밝은 성격과 정의감이 구준표와의 관계에서도 당당함으로 승화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이런 성숙함이 항상 구준표와의 관계에서 발현된다. 두 사람은 서로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잔디에게 호감을 느낀 준표가 마음을 표현하자 거절했을 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화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이후로는 자신의 마음이 거절당해도 '네가 다른 남자한테 가도 난 몇 번이라도 너를 다시 찾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할 줄 아는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잔디가 준표에게 있어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생존에 직결된 것이다. 우리는 의식주와 뛰어난 명예만이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여기고 사람으로서의 인격적 성숙과 사회성,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충족감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의식주의 경제적인 부분보다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강인함이다. 구준표는 세계 기업을 거느리는 후계자로서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결점이 없지만 자신의 미성숙함과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해 약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준표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반대편에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며 시청자로 하여금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세계를 바꿔준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한다. 구준표의 충동성과 폭력성은 금잔디의 부드러운 인격적 성숙함으로 무뎌지게 만들고, 금잔디가 어렵고 힘들 때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주고 경제적으로 충족해 줌으로써 어두운 동굴 속에 갖힌 억압시킨 구준표를 구원해주었다. 뜨겁게 사랑하고 얼마 되지않아 차갑게 식어버리는 사랑이 아니다.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 이러한 운명적인 서사가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겼다

구준표가 잔디에 대한 사랑을 항상 확신한다. 자신은 잔디 없이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되새기고 매일 볼 때마다 더 좋아하게 되는 이러한 부분이 비현실적인 클리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같이 있어서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돼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꽃보다 남자는 하이틴 판타지 드라마지만 한 편으로는 운명적 만남과, 진정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드라마로써 감명깊게 본 작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