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지 Sep 20. 2023

결핍과, 결핍 그 사이 어딘가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 2002

사랑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주인공 <레이지>를 보면서 제목은 자신의 욕구의 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레이지는 그 누구보다 가족의 부재로 사랑에 갈증 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했던 레이지지만 자신의 욕구와 현실과의 대립각의 격차를 줄여보고자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자기세뇌를 했을지 모른다.


난 드라마라는 것은 사람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희극이든 비극이든 '사람'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극의 주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정형적인 흥행 요소는 항상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성장형 캐릭터나, 청렴한 정치자가 나라를 이끄는 등 비현실적인 것뿐일까.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다, 아픈 부분이 있고 고달픈 부분이 분명 있다. 이런 아픔까지 어루만져줄 수 있는 드라마가 진정한 작품성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람의 감정은 물론, 서사, 아픔, 그리움과 애달픔과 같은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선들을 보여준다. 그것도 사람 본래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해 준다.

인간은 언제나 원하는 사랑을 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구를 배척하는듯한 레이지의 언어, 여자들을 끼고 놀며 유흥을 즐기면서 자신을 팔아 돈을 받아내고, 자신을 팔며 연기를 한다. 누구보다 사랑에 목마른 레이지가 자신의 내면적 욕구와는 반대로 행동할 때, 외면적 인격과 내면적 인격의 충돌이 연출되면서 등장인물의 내면의 세계에 시청자들은 깊이 빠져들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젠틀하고 수다스러운 호스트맨이지만 결국 사랑도 믿지 않고, 진실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다. 가부키쵸에서는 호스트로 일하는 레이지는 '0시 0분에 태어나 탯줄도 끊지 못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라고 농담스럽게 얘기한다. 자신의 허기짐이 채워지지 않으면 여자를 끼고 진심인 척 연기를 하거나, 돈을 얻기 위해서 온갖 위선을 떠는 듯 살아간다.

사람이 자신의 심리적 지지대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레이지처럼 욕망에 찌든 세상을 원망하고 그렇게 닳을 대로 닳아버린 약아빠진 세상에 대한 회의감에 열병을 앓는다. 레이지는 그러한 인물이다, 초반부 레이지의 인물을 설명하는 서사에서 내레이션과 레이지의 상황, 표정을 적절하게 연출한 것이 매우 인상 깊었다. 여자주인공 아코 또한 권위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주변 가족들조차 떠나 행방불명이어서 항상 외롭게 살았어야 했던 아코는 병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시력까지 잃고, 커다란 저택의 방에 자신을 가뒀다.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의 부재 탓에 어떤 사람이든 믿을 수 없어버린 아코는 남 앞에 나서기보다는 은둔하는 삶을 택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레이지가 아코의 유산을 탐내고자 자신이 떠났었던 친오빠라고 위장하면서 같은 집에 살게 되고 점점 아코를 자신을 신뢰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오빠의 존재를 거부하고 믿지 않고, 달가워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위선 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빠의 죽이고 돈을 얻기 위한, 오빠만의 연출극은 오히려 아코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비록 연기임에도, 서로가 서로의 결핍과 아픔을 마주하면서 레이지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를 보는 느낌이다'라면서 첫 만남 때부터 눈빛으로부터 아코를 알아봤다. 자신은 잃을 게 없다면서 남을 죽여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 호스트가, 돈을 위해 오빠로 위장하면서 점점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게 되는 감정선이 일품이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동료들에게 얼른 죽이고 유산을 가져오겠다고 약을 받았지만 끝내 아코를 죽이지는 못하며 사람을 믿지 않는 아코에게 자신을 보면서 믿음을 얻고 신뢰를 얻게 하였다. 레이지는 자신이 진심으로 대해주자 아코의 눈빛과 표정과 마음이 변화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지만 생애 초기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본래 욕구와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거울 같은 그녀를 결코 이용하거나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코에게서 자신의 아픔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비록 시각장애인 설정,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설정으로 신파극이 갖춰야 할 요소를 다 갖추었지만 보통 신파극과 같은 삼각관계의 과열이나, 감정선에 맞지 않는 과잉감정의 과열과 같은 선정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지 않은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드라마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신파극이 가져오는 사랑놀음이 아니라 사랑을 믿지 않는 두 남녀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과 대조되는 사랑에 목마른 두 주인공, 그리고 남자주인공이 이용하면서도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안타까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조명하는 연출까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이야, 돈 따위로는 살 수 없어." 돈과 마음을 같은 저울에 달지 마.
사람의 마음도 너의 마음도 말이야.

사랑에 감사하며. 2002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 <꽃보다 남자>속 사랑의 형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