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사랑은 때때로 '댓가성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가 형식적으로 하는 거래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상대를 파악할 때 자신의 신념으로 비춰진 상대방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서 바라본다.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하지만 결국 상대를 볼 때 거울을 보듯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어떠한 사람이 너무나 밉다고 해보자. 물론 상대방이 자신에게 피해를 끼쳐서 싫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이 이유없이 너무나 밉다면 그 미운 점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일 확률이 크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이 투영된 썬글라스를 끼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과 다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방과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분명 어떤 점을 보고 사랑한다. 이유가 없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랑에 이유가 없지 않다. 우리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너무나 좋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좋고 그래서 그 사람이 좋아지고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이 전체에 퍼져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곤 한다. 아무튼 그 사람을 어떤 이유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서의 '상호작용'은 무조건 댓가성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양상은 드라마 속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 좋아해서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은 갈등상황을 맞닥들이게 되는데 보통 남자 주인공이 사업적인 것이나 사생활 적인 것처럼 사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심리적인 외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게 발현되는데 그걸로 인해 여자주인공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트라우마' 상황을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세계는 거대한 정신병동'이라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희노애락을 느끼게 되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슬픔의 감정은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잡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드라마의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으로써 위로하고 동정할 때 우리는 대리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대체로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과거사나 가정사에 대해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성애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품는 모성애의 감정은 남자주인공의 삐뚤어진 인격을 교정하는 치트키가 되어주는 경우가 많다. 삐뚤어졌지만 사실 천성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여자주인공의 도움을 통해 부각해보이면서 결국 남자 주인공의 성공 서사와 사랑 서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속, 남녀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는 모성애라는 호르몬장난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