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의 고난과 열병에 대하여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행복'이고 행복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려면 사람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일본 드라마를 볼 때 좋아하는 것이 청춘성장드라마다. 사람의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귀결되는 성장과 행복감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나는 어떤 드라마보다 짜릿함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성공은 겉으로 드러나는 재능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감춰져 있는 '잠재력'이다.
역시 사람은 서로서로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로망이 있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던 자신의 천재성을 끄집어주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파트너가 생긴다는 것은 직업적 성공과 사람관계의 유대감이라는 욕구를 채워 돈독하게 해 준다.
치아키와 노다메가 처음 만난 장소는 노다메 집 작은 방 쓰레기더미 속에서 친 베토벤의 음악이었다. 낙담하던 치아키가 일본에 조금 더 머물 이유가 생기게 되었던, 바로 노다메의 재능을 알아본 두 사람의 첫 만남이기 때문에 더욱 감명 깊다. 노다메는 피아노에 한 번 빠지면 온 집안을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정리도 하지 못하고 끼니도 거르는 외골수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것을 다 받아주고 치워주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치아키 선배다.
치아키는 외국이 아닌 모국에 남아있어야 하는 좌절감이 재능 있는 노다메를 더 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휴식기간의 달콤함으로 자리 잡는다. 그 덕분에 모국에 남아서 노다메의 추천으로 자신이 S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맡게 되고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면서 본인만의 오케스트라 단합 무대를 펼치며 단합력과 협동력, 그리고 동료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는 등 전에 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추후 유럽에 가서 데뷔를 할 때 치아키에게 가장 소중한 능력이 되어준다.
노다메의 천재성은 치아키의 자극제가 되고 음악에 대한 뜻이 없었던 노다메는 나중에 같은 합주공연을 선배와 하고 싶다는 꿈을 잡고 유치원 선생님 대신 더 큰 무대에서 치아키와 같은 무대를 서는 것을 꿈으로 한다. 모국에 남아있던 이유는 서로 날갯짓을 하기 전에 자신을 재정비하고 더욱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넘치는 것을 받아주고 부족한 걸 채워주는 서로는 서로를 동경하기 시작한다.
왜지 너는 재능이 넘치고 그렇게나 음악을 향한 열정을 가졌으면서 어째서 늘 절망을 짊어지고 있는 거지?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결코 육체적인 관계나 스킨십의 횟수로 국한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그 연인들의 정체성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는 동료의 말에 얼굴이 바로 떠오르는 사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지의 여부 결국 사랑도 상호관계에서 아무런 감정적 교류도 동조도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다메 칸타빌레에서의 서로가 서로에게 동반상대가, 자신의 또 다른 시작이 되어준다는 것이 서사적으로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대사와 상황의 섬세함은 등장인물 하나하나 헛된 사연이나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연이라고 해서 덧없는 괴로움 아닌, 주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참 친절하다, 피아노의 선율은 가슴을 울리고 대사의 선율은 온 세포 속을 파고드는 것만 같다. 사랑이 짐이 될까 봐 두려운 사람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희망을 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의 열병과 무해함과 때로 방출하는 공격성 또한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순간이 정말 인간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는 사람,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을 더 크게 날갯짓 할 수 있게하고 재능을 발견해 자신을 좋아하는걸 에너지삼아 더 잘 될 수 있게 자기만이 옆에서 도울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관계성이 두 사람이 왜 꼭 맞는지, 꼭 필요한 사람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노다메의 사랑은 급진적이다 피아노를 칠때도 자유자재다 개성이 넘치고 통통 튀고 난다. 치아키의 사랑은 깊어가지만 느리고 피아노를 칠 때도 속도에 맞춰 차분하고 반듯한 연주다. 이런 속도감의 차이, 협주곡을 치면서 맞춰나가는 서로에게 맞추고 싶어하는 마음이 정말 소중한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폭제이자 자극제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멘토이자 연인이다.
날씨의 변화에 소리가 바뀌는 것처럼, 사소한 것이 전체를 바꿔버리는 일도 있다.
우리들의 시작은 쓰레기더미에서 들은 베토벤이었고 작은 연습실에서 피아노 두대로 친 모차르트였다.
2006, 노다메 칸타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