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보다 더 오래 집권할 것이 유력한 러시아의 대통령. 그 선거현장에서
2024년 3월 15일(금)부터 오늘, 17일(일)까지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 기간이다.
전쟁이 터진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상황들을 바꿀 변수들 중 유력한 것들 중 하나는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 선거였고, 오늘로 그 변수 중 하나가 결정이 된다.
하지만 ‘변수’로 불리기엔..
현 대통령의 당선이 너무나도 유력해 보인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으며, 많은 이들의 인생이 정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줬던 그.
오히려 한국의 대통령보다 내게 직접적인 영향들을 끼쳤고 많은 충격을 줬던 그.
Vladimir Vladimirovich Putin
[제6대 총리] 1999.08 - 2000.05
[제3대 대통령] 2000.05. - 2004.05. (4년) - 53.4%로 당선 (제1임기)
[제4대 대통령] 2004.05. - 2008.05. (4년) - 71.3%로 당선 (제2임기)
[제10대 총리] 2008.05. - 2012.05. (4년) - 대통령제 6년 제로 바꿈
[제6대 대통령] 2012.05. - 2018.05. (6년) - 63.6%로 당선 (제3임기)
[제7대 대통령] 2018.05. - 2024.05. (6년) - 76.7%로 당선 (제4임기)
[제8대 대통령] (유력) 2024.05.07-
이번 포스팅에서는 현지에서의 투표 분위기, 이슈들과 그의 재임기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려 한다.
현지 분위기와 이번 투표의 이슈는?
러시아 내에서 그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란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분위기고, 내가 지내는 동안에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정치 얘기는 참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그를 지지하는 것은 안전하고 괜찮지만, 반대하는 것은 위험하고 쉬쉬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흐름대로 이미 결과는 '답정너'고.. 이번 선거에서 내가 관심 있게 봤던 이슈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투명한 선거함
한국 언론에서 '기상천외'하다며 러시아의 투표함이 투명하다는 보도를 낸 걸 본 적이 있다. 며칠 전 함께 식사한 한국 주재원 분들도 "아니 여기는 투표함이 투명이라면서요?? 뭐 이런데가 다 있어요? 투표용지 다 보이게 현장에서 결과 보려고 한다는 거라면서요?"라고 했다.
사실 투표함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은 불투명한 함을 사용하나, 프랑스, 우크라이나 등 다른 나라에서는 투명함을 사용한다. 선거 시작에 앞서 이게 빈 상자이며, 한 사람이 투표용지를 두 개씩 넣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만 그런 건 아니긴 한데..
투표 현장에서 투표하는 걸 보니 투표용지가 A4용지 같이 되어 있었고 접지도 않고 펼쳐진 상태로 넣는 걸 보니 한국인 입장에선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접어서 넣는 사람도 있었긴 한데, 접으면 괜히 '야권 쪽이구만'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온라인 선거
이번 선거에는 온라인으로 선거를 가능토록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원 24 같은 웹사이트가 있다. 고스우슬루기라는 사이트인데, 여기서 휴대폰 등 개인정보로 인증하고 들어가면, 2분 만에 선거가 가능하다. 옆에서 온라인으로 투표하는 것도 봤는데, 너무 손쉬워서 놀랐다.
하지만 내 지인의 경우는 온라인으로 하면 더더욱 선거 결과 조작이 손쉬울 것 같다며 직접 본인 지역구 투표현장에 가서 투표한다고 했다.
새삼, 부정선거 걱정은 없는 나라에 사는 게 정말 감사할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 차이, 지역 차이
모스크바에 내 주변 젊은 친구들은 분명 反정부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대체 80%의 지지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물론 독립 여론조사 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것도 있기야 하겠지만 러시아 과반 이상의 국민이 친정부 의사를 가진 것은 나 역시 체감할 수 있다.
그러니 한마디로, "수도에 살면서, 외국 문물을 많이 접한, 젊은 친구들"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개탄하는 경향이 많은 반면, "수도에 살아도 TV나 국영방송, 신문으로 소식을 접하는 + 소련 시대를 겪은 중노년층"은 친 정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엄마와 친구가 정치 때문에 거의 싸우다시피 하는 것도 보았고, 이번 선거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자녀가 너무 싫어하니 눈치는 보면서도 "그래도 그가 시작한 건 그가 끝내게 해야 한다"며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걸 보기도 했다.
또 모스크바에 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만 가도, 모스크바 근교 도시만 가도 전쟁을 옹호하는 포스터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또 시골 지역은 더욱이 외국 뉴스를 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현 상황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또 살기가 어려운 이들에겐 '우리가 살기 어려운 건 서방이 우리를 못 살게 괴롭혀서다'라는 문구는 충분히 마음을 울리고 내부로 결집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경제력 낮은 시골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해진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듯, 중노년층은 소련의 영광을 맛보기도 했고, 소련이 무너지며 혼란했으나 강력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그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그는 다수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말 나온 김에 (?) 그의 재임기 별로 있었던 일들도 함께 짚어보려 한다. 보다 보면 왜 이렇게 그가 연임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되었는지 각이 나온다.
1999년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정치계에 등장해서, 약 25년이 되는 지금은 불위의 권력이 되어 러시아 정치계를 꽉 잡고 있는 그.
5 임기를 앞두고 짚어보는 그간의 임기들
제1임기 (2000-2004년)
2002년에 그 유명한 '모스크바 인질극'이 일어났다. 체첸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리스트가 약 850명을 인질로 억류한 건데 강경하게 대응, 제압해 내는 걸 보며 러시아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냈다.
막강했던 소련제국이 무너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휘청이던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그런 강력한 지도자가 때마침 필요했을 것이다.
그와 친한 올리가르히(소련 관료 출신, 거대 재벌로 성장한 기득권 세력)들에게 부를 분배해 정치 기반을 탄탄히 했다.
또 이런 사람은 왜 또 운까지 좋은지, 고르바초프 시절 때보다 가스, 석유값이 3-4배나 올라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실질임금이 3배 오르니, 나에게 오는 피해가 없다면 당연히 나라도 지지했을 것 같다.
제2임기 (2004-2008년)
정치적 토대를 닦고,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사회도 많이 안정화시켰다. 소련 시대 때 힘들어서 알코올을 찾던 사람들이 직장을 잡으니, 사회 전반으로 심각하던 알코올 중독 문제도 줄어들었고, 피폐하던 거리가 깔끔해지기 시작한다. 2 임기 그는, 71%의 지지율로 다시 대통령이 된다.
본격적으로 언론, 반정권 인사 탄압도 이뤄진다. 그의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는 반정부 저널리스트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2006년 총을 맞고 죽었고, 약 한 달 뒤, 반 정권 인사이던 전 FSB 요원은 그 유명한 '홍차'를 마시고 죽었다.
헌법상 3선 연임이 불가하자, 2008년 본인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던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통령으로 오른다. 한번 그렇게 총리직에 물러나있었으나 사실상 대통령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와중에 2011년 있었던 러시아 총선에선 140%가 넘는 투표율이 나오면서 러시아 국민들, 그리고 서방으로부터도 부정선거 이슈가 붉어졌다. (국민 총 인구수보다 투표한 사람이 많다는게 이상하니..ㅎㅎ)
제3임기 (2012-2018년)
그리고 2012년 64%로 그는 3번째로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역시 그를 대적할만한 야권 지도자가 명확히 없는 상황이었고, 역시 강한 리더로는 그가 제격이어 보였다.
다만 2011년 부정선거, 선거개입 이슈에 이어 대통령 선거 시에도 체첸 일부지역에서 푸틴 득표율이 107%이 나오는 등 또다시 부정선거 이슈가 있었다.
여전히 그가 많은 지지를 받는 건 보이지만 부정선거가 지속된다는 느낌이 계속되며 이 선거 결과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나 하는 의문이 생기며 12만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러 정부 측 추산은 3만명)
남자친구의 친구도 이때 시위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잠시 끌려간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역시 강력하게 제압됐다 한다.
그의 정권과 갈등이 있던 올리가르히 보리스 베레좁스키는 2013년 사망했다.
2014년 3월에는 우크라이나 군사개입과 크림반도 병합이 있었고, 2015년 부정선거와 우크라이나 개입을 비판해 오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도 총격으로 사망했다.
제4임기 (2018-2024년)
유력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대선 출마가 불허되고, 역시 대선 과정에서 부정 투표가 발생했으나 76%라는 높은 지지율로 4선에 성공한다.
2020년엔 대통령 3번 연속으로 할 수 없도록 돼있던 헌법을 개정해, 2024년 대선에도 도전할 수 있게 했다.
2022년에는 지금까지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러우사태가 발발했다.
Diversionary foreign policy(국면 전환용, 관심전환용 외교정책)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옛날에 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 지역을 되찾고자 하는 그의 구호는 옛 세대의 심금을 울렸고, 외부에 적이 있다 보니 내부적으로 지지층을 단결케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 듯하다.
그리고 야권 지도자 나발니는 2024년 2월 얼마 전 교도소에서 돌연 사망했고, 현지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인물이 없어진 상태에서 2024년 선거를 시작하게 된다.
제5임기 선거 (2024년-2030년)
71세인 그는 이번에 당선, 다음에도 당선되면 2036년까지 총 36년 통치가 가능하게 된다. 그의 예상 득표율은 80%가 훌쩍 넘는 가운데, 대선 후보 중 2,3위를 다투는 이들은 각각 6%의 예상 득표율을 보이며 결과는 물 보듯 훤 해 보인다. 알렉세이 나발니가 죽고, 새로운 야권 지도자 후보로는 '새로운 사람들' 소속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가 있는데, 경쟁자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도 투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벌써 7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누가 당선될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러 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지"에 대한 결과를 궁금해하는 그런 선거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매우 뜨거운 이슈고,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있어 이번 주제를 다루게 되었는데, 이렇게 현지에서 정치에 대한 글을 쓰자니 괜히 무서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