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쿠 Mar 15. 2024

나의 이직일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일본에는 이직 에이전트(転職エージェント)라는 게 있다. 헤드헌터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구직자가 이직 에이전시에 가입을 해야 하고 등록한 이력서와 직무경력서를 기반으로 이직 에이전트를 배정받는다. 잔인하지만 구직자가 경쟁력이 없으면 연락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이직 에이전시에 가입을 할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구직자가 채용되면 해당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직 에이전트를 통해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나도 이직 에이전시 15군데 정도에 가입했다. 그중에서 내게 답장을 주고 면담을 하자고 한 곳은 절반이었다. 절반 중에서도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이직 에이전트는 단 한분이었다. 


면담 때 이직 에이전트들 모두가 비슷한 말을 했다. 


이직사유가 명확해 보이고 저라도 이직을 했을 것 같아요...
타 업계 이직은 빠를수록 좋으니까 지금 이직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좋고요...
3개 국어는 큰 강점이네요...
다만...

경력이 1년 미만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네요.


일본에서 이직 에이전트를 통해 이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최소 3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 이직 에이전시를 통해 사람을 채용할 경우, 에이전시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즉시 전력감이 아닌 이상 그 정도의 지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의 경우, 이직 에이전트를 이용하지 말고 직접 제2신졸(第二新卒)로 지원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제2신졸에 대해 설명하자면, 직장인 1년~3년 차 사이에 관둔 사람들을 위한 전형이다. 하지만 신졸전형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선택지가 없다. 대부분 사람이 부족한(많이 관두는) 포지션이고 공고도 불규칙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언제 뜰지 알 수가 없다. 




최종적으로 에이전트 세분만 내게 맞는 구인을 정리해서 보내주겠다고 했고, 나머지 분들은 지금은 에이전트를 쓰지 말고 직접 지원하는 것을 추천한다 하고 더 이상 연락을 주지 않았다.


세분 중에서 딱 한 분만 내 요구사항을 정확히 반영한 구인들을 보내주셨고 나머지 두 분은 마치 재고처리라도 하는 듯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구인만 계속 던졌다.


사실 이직 에이전시에 가입을 시작한 건 2023년 11월이었다. 그때부터 나름대로 이직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주말=쉬는 날”이라는 통념을 거부하는 광고 업계 특성상 아무리 시간을 만드려고 해도 이직을 준비하기에 벅찼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더 지속되는 게 싫어서 3개월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마인드로 퇴사를 했다. 만약 3개월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수진을 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본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최종 두 군데에 합격했다.


한 곳은 에이전트를 통해 지원한 빅 4 회계법인의 컨설팅펌이었고 나머지 한 군데는 혼자서 지원한 일본 대기업이었다. 회사 간판, 업계, 업무 내용, 사풍, 워라벨, 급여, 복지 등등 여러 조건을 따져 본 결과 내가 직접 지원한 일본 대기업에 입사하기로 결정을 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 최종 합격까지 도움을 주신 에이전트분에게 그동안 감사했고 최종적으로 다른 곳으로 입사를 하게 되어 죄송하다고 연락을 드렸다.


길게 보면 네 달 짧게 보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싸웠고, 그렇게 내 인생 첫 이직활동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첫 직장에서 1년도 못 버티고 관두면 적어도 일본에서는 좋은 곳으로 이직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前 직장 부장님의 말씀, 제2신졸 전형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고 했었던 여러 에이전트들 


그들 모두가 틀렸다


나는 퇴직하고 한 달 반 만에 일본 대기업에 합격했고 그 포지션은 제2신졸 전형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게 내가 이번에 내린 결론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퇴사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