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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부르스 Dec 23. 2022

형제 순서도 잘 타고 나야 해

둘째의 설움     


하~ 내가 둘째로 태어났다. 오 형제 [딸, 딸, 아들, 딸, 아들] 중에.

장남이던 아버지의 아들 욕심에 엄마는 임신할 때마다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첫 번째 딸이야 옛말에 살림 밑천이라고 했으니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둘째로 내가 태어났을 때 추측하건대 안 봐도 비디오다.     


또 딸이야?”     


이 말은 분명히 내 할머니가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생신고를 하러 가던 날도  할머니는 속상하다며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있었고 면사무소까지 가는 길에 엄마가 적어준 생일 메모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내 생일은 아버지의 생일 날짜와 똑같다.  

   

3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사랑은 내 남동생에게 쏠려 있었다.

동생이 이유식을 할 때쯤 엄마가 사과 반쪽을 잘라 숟가락으로 삭삭삭 긁어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입쯤 나한테 줄 법도 한데 침만 꼴딱꼴딱.


남동생이 4살 때 여동생이 태어났었고 남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일방적이었다. 

할머니는 분만하느라 힘들었던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한 솥 끓여놓고 작은아버지 집으로 가버리셨다.

또 딸 낳았다고 할머니의 분노를 표현하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 불혹의 나이가 되었어도 엄마는 가끔 그때의 서운함을 옛날 이야기하듯 하곤 했으니까. 

    



나는 호위무사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게 아버지는 남동생을 항상 돌봐야 한다고 했다. 넘어지지 않게 돌봐야 하고 밖에 나가서 놀 때 동생을 누군가 해코지하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고.

나는 남동생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는 역할도 학교를 들어갔을 때 가방을 들어주는 것도 동생이 놀고 들어오면 손과 발 얼굴까지 씻겨주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셋째딸 그러나 네 번째 아기     


아들과 아들 사이에 끼어 태어난 여동생 또한 눈에 띄지 않는 딸이었다.

울면 운다고 야단맞고 밥을 느리게 먹는다고 야단맞고 콧물을 훌쩍훌쩍한다고 야단맞고….

여동생의 형제 순서는 나보다도 더 나빴다.

동병상련?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언니보다 여동생이랑 더 잘 지냈고 남동생과 여동생을 보살피는 일은 어린 나에게 사명으로 바뀌었다. 

남동생이야 워낙 예뻐해 주는 식구들이 많았지만, 여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여동생의 처지에서 보면 나는 엄마 대신이었을 것이다. 

나의 작은 등짝이 불편할 텐데도 여동생은 울다가도 사르르 잠이 들곤 했다. 



  

엄마는 다섯 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엄마가 아침에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워서 학교가 끝나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방안에 누워있는 조그마한 아기를 쳐다보며 


엄마 아들이야 딸이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아들이야 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남동생이네? 하며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들을 둘 이나 낳았으니 할머니가 더 이상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형제가 다섯이라고 하면 딸 아들 비율이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셋째 딸이 제일 예쁘다고도 한다.

정말 내 여동생은 예쁘다.

지금도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휴일이면 종종 우리 집에 들러 식사도 같이하고 차도 마신다.

그럴 때면 여동생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언니 내가 어릴 때 왜 그렇게 울었을까?”   

  

아마도 너는 사랑이 고팠을 거야나도 어린아이였었는데 내가 너를 예뻐한들 그것이 엄마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가 되었겠니?”

     

나는 더 이상 호위무사가 아니다 추억의 호위무사일 뿐.

여동생은 웃으며,     


지금은 언니가 엄마야.”라고 말한다.    

 

동생 보다 겨우 여섯 살 많은데 엄마 같은 언니라니…. 하다가도 나머지 나의 사명은 정말 여동생한테는 그래야 할 것 같다.

여동생은 지금도 혼자 살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 나는 전생에 여동생의 엄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ㅎ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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