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입맛이 비슷하다. 그래서 반찬 걱정은 하지 않는 편이다.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얼큰이’ 하고는 거리가 멀고 김치도 있으면 먹지만 없어도 찾지 않으니 김치를 담아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남편시집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오늘은 또 무슨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하나’라는 뜻임을 알았다.
국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반찬은 기본 다섯 가지는 있어야 하고 그중에 고기반찬은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며 반찬 걱정하는 친구와 다르게 나는 친구의 음식솜씨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걱정하며 지금까지 만들어 왔다면 분명 ‘장금이’수준은 되어있을 테니까.
음식은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라서 만약 내 남편이 매일 잘 차린 밥상을 받고싶다고 해도 못 해냈을 것이다.
내 친구가 부러운 것은 ‘뭐 먹고 싶다’라고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졌다.
친구 남편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음식솜씨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말이다.
친구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아무거나 만들어 주어도 잘 먹어주는 남편을 만났다고.
우린 겉으로는 서로 이렇게 말했지만, 속마음은 다르지 않을까?
나는 친구가 아직도 부엌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니 짠하다고 느꼈고 친구는 내 남편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못 얻어먹으니 짠하다고 느꼈을지도.
어쩌면 서로 헤어지고 집으로 가서 친구는 남편에게 외식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부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 켜놓고 친구 흉내를 내며 맛 나는 음식을 하나 골라 잡채 불리고 찜닭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남편은 아파트살이를 좋아하고 나는 단독주택 살이를 선호한다. 편리함이야 아파트를 따라갈 수야 없지만 조그만 마당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가 나의 주장이다.
남편은 장단점을 골라 열 가지 이상 나열해 놓고 내게 소리 내 읽어주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왜 주택 살이 하고 싶냐고.
아마도 남편은 텃밭에 상추, 고추 키우고 꽃 심고 그런 것 하고 싶어서 그러냐고 물었다. 마당이 넓으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생선을 석쇠에 굽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예상 답변이 아니라서 그런지 남편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엔 ‘인정’이란 뜻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린 둘 다 생선구이를 좋아하다 보니 자주 먹는 편인데 생선을 튀기거나 오븐에 구울 땐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몇 시간 동안 냄새와의 전쟁이 벌어지곤한다.
그러니 남편은 그 장면이 상상이 돼서 웃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 왕대봉을 한 상자를 샀다. 홍시를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샀는데 익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곶감을 만들어 볼까? 라고 물어보니 남편이 좋다고 했다.
처음 만들어 본 것이라 곶감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지만 마치 미술 시간에 짝꿍이랑 오렌지 색종이를 공 모양으로 접어 매달 듯 남편이랑 둘이서 하나 씩 껍질을 벗기고 실에 꿰어 베란다 빨래걸이에 걸어두고 보니 늦가을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과일나무 하나 있으면 좋겠당~. 마당 있는 집이 그래서 좋다니깐.”
“여기가 리 여사 마당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마.”
하기야 남편은 내가 무엇을 하든 참견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 비어있는 방을 텃밭으로 만들어서 키우고 싶은 것 있으면 해보라고 하니까.
“소만 키우지 마레이” 하면서.
“What? ㅎ ㅎ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