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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부르스 Dec 03. 2022

가장 평범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어

더 늦기 전에


아직도 생활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은 내가 대단하단다. 혼자서도 잘 노니까.

잘 노는 방법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하고 나도 한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한 나는 모임에 회비 내고 나가서 점심 식사에 자리 바꿔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지 않아도 잘 놀 수 있는 나만의 방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이 내 시간이 되었을 때 맨 처음 생각했던 것이기도 하다.


처음엔 뭐라도 배워 작으나마 수입으로 연결 해야 하나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다시 일의 연장일 뿐 내가 있었던 익숙한 일터에서 낯선 다른 일터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쉬엄쉬엄, 또는 노느니 해보지 뭐로 생각하다가 막상 하게 되면 책임과 의무감은 같은 무게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은 그만하고 아껴 쓰고 놀 땐 놀자고 한다. 그래야 떠나고 싶을 때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고.

처음엔 남편이 우리 생활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은 ‘우리가 그럴 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너무 놓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퇴직 후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아무 때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겐 여전히 시간은 많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드라이브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는 여행을 못 할 바에야 둘이서 다니는 여행으로.


나이가 들수록 장거리 여행은 부담일 테니 우선 해보기로 했다.

제주도 한 달살이 여행을 마치고 완도를 거쳐 신안으로 해서 긴 여행을 마쳤다.

얼굴 사진을 찍는 대신 풍경 사진과 여행일기를 꼼꼼히 써봤다.

보통은 간단한 메모 형식으로 썼는데 자세히 기록해보니 일기 쓰기를 잘했다 싶다. 사진보다 더 자세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마치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여행일기를 꾸준히 써 보려고 한다. 



시그니쳐 음식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지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함께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더욱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는 여유 있게 살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 수 있게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 큰 실수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던 것이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갑부가 되었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모두 다 놓친 셈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맛’이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음식도 없다. 아이들에겐 오히려 ‘할머니의 손맛’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을 골라 나만의 시그니처 음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 국들을 먹으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라고 할 만한 것으로. 바로 소고기뭇국과 미역국, 반찬으로는 우엉 조림이다.

더 이상 고기를 참기름에 볶지 않는 담백하고 맛이 있는 뭇국으로.

조갯살로 국물을 맛있게 만드는 미역국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를 하고 난 후 아들과 딸이 모두 싸달라고 할 때 ‘yes!’ 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너—무 좋아서.

‘엄마가 이렇게 맛있게 만들 줄 몰랐지? 홍 홍 홍’ 하면서.


요즘은 다른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평범한 것들이 나에게는 새롭고 도전할 만한 것들이 되었다. 

예전엔 정말 하기 싫었던 주방일과 청소들도 한꺼번에 다 하려 하면 여전히 하기 싫겠지만 지금은 나눠서 하다 보니 재미가 생겼다.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들여다보면 방법이 있다. 아이들은 많은 장난감보다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있을 때 더 몰입해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는 것을.


나도 그렇다. 

집안에 모든 것이 즐거운 도구이며 난 모래밭에 앉아 있는 아이와도 같다.

어제는 베란다에서 빨간 포인세티아를 옮겨 심었고 오늘은 주방에서 시래기 삶아 건져놓고 내친김에 구연산으로 스테인리스 그릇들을 닦았다. 내일은 겨울에 어울리는 액자를 거실벽에 걸어두고 복슬복슬한 털 쿠션들로 따뜻한 12월을 맞이해해 보려고 한다.

인생은 복습이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이제부터 놓치지 말아야지.

나이 들수록 ‘만약에 내가….’ 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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