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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4

앞세워 걷는 나무

  초여름, 젊은 아카시아나무 가지에 매달린 꿀 가득 품은 고불고불한 술 장식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 본 적 있어?


  내 아버지는 벌치기, 그래서 나에겐 아카시아꽃만큼 아픈 꽃은 없지

  나의 피는 유목일까 


  발 헛디딘 적 많아 긴 평생의 하룻밤, 아직도 나를 비애하고 있는 거지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는데 왜 아버지 생각이 날까


  저녁과 아침, 새벽과 밤의 순서대로 말미를 보내고 봄이 오면 남쪽으로 떠날 것이라고 -나는 말한 적 있었네 이듬해 돌아오면


  검고 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들어가 본 적 있어?


  올리버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해


  시의 숲으로 들어가고 싶었어

  아니 차라리 시를 놓아주고 싶었지


  나를 방치해 온 시간


  몇 년의 날씨가 필요할지 모르겠어 당분간 십이월은 이르고


  죽음으로

  숲으로

  나에게로

  더 다가가지 못해 나무를 앞세워 걷는 일

  흰 꽃잎을 따 먹는 일 

  빠져들어 빠져들어 


  이봐, 그저 조금씩만 숨을 쉬면서 그걸 삶이라고 부르는 거야?


  나의 길은 방황, 나로부터의 방황

  이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발 앞에 돌멩이 하나  


  나는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슬픔은 늘 새것인 양 내일이 태어나는 순간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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