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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4

폭설

  눈 속에 너는 서 있다

  마치 늙은 개가 아니란 듯

  고개를 돌리고 인간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눈이 쌓이고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은 없다


  나는 들고 온 시집을 펼쳐

  늙은 개에게 읽어준다


  나는 순해진다

  너는 순해진다

  너는 나를 굴복시킨다

  우리는 곁에 있다


  복잡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지도 않기로 했다


  귀를 닫고 인간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만

  고통에 짓눌려 짖지 않기로 했다


  너는 시를 알아듣는 것 같다 

  -혼자 견디는 고요를 아는 것 같다


  너에게 흰빛은 어떻게 보일까  


  앞발을 주욱 늘이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배를 깔고 눕는다

  폭설 속에 너는 있다

  나는 있다


  하루 종일 산정 앞에서

  홀로이면서 홀로가 아닌 듯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같은 존재로 있다


  눈은 그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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