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너는 서 있다
마치 늙은 개가 아니란 듯
고개를 돌리고 인간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눈이 쌓이고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은 없다
나는 들고 온 시집을 펼쳐
늙은 개에게 읽어준다
나는 순해진다
너는 순해진다
너는 나를 굴복시킨다
우리는 곁에 있다
복잡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지도 않기로 했다
귀를 닫고 인간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만
고통에 짓눌려 짖지 않기로 했다
너는 시를 알아듣는 것 같다
-혼자 견디는 고요를 아는 것 같다
너에게 흰빛은 어떻게 보일까
앞발을 주욱 늘이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배를 깔고 눕는다
폭설 속에 너는 있다
나는 있다
하루 종일 산정 앞에서
홀로이면서 홀로가 아닌 듯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같은 존재로 있다
눈은 그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