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영국에서 살아남은 전 대학생 현 프리랜서 넋두리 part.1
2016 년 11월 26일. 오늘 여행 티켓을 끊으면서 영국에 있으면서 충분히 지저분해진 나의 여권을 바라보니 '와, 나 이제 영국 6년 차이네.' 하며 요즘 약간은 권태가 온 이 영국 생활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긴 6년이란 시간이 그럴 만도 하구나. 영국과 6년째 연애 중. 그리고 영화 '6년째 연애 중'의 부제는 우리 오늘 헤어졌어요 일정도로 6년은 무언가를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지만 단정 짓기에는 아쉬운 시간인 것 같다. 영국에서의 6년은 꽤 오랜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에게는 늘 비자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짧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충분히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기에는 충분했었던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수많은 만남을 했고 이별을 했다.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 특성상 정말 많은 곳에 방문했었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하는 성격 덕분에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아파도 보고 아차 싶기도 해 보고 잘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고뇌하고 있던 순간도 있었다.
런던은 내게 반전의 도시였다. 나의 영국인 친구가 늘 하는 말처럼 ' 100% 나 절대라는 말은 없어'라는 말을 늘 실감시켜주는 신기하고 가끔은 눈물 나게도 현실적인 도시. 뭐, 여기는 계절부터가 반전이니까. 5월부터 시작되는 저녁 9시 넘어서 지는 해와 정말 파아랗고 푸르른 여름은 이곳에 단기로 온 관광객들에게는 와 여기가 영국 맞아? 하게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달만 지나면 오는 오후 4시부터 어두워지는 밤과 춥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은 와. 여기가 영국 맞네 하게 하니까.
그런 영국에서 살다 보면 사는 사람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 건지 뭔지 정말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차라고는 마시지 않던 내가 이제는 촬영장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에 빌 더스티를 푹하고 말아서 오트 밀크를 곁들인 차를 쭉 들이키는 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마트에 가서 좀 더 맛있는 티가 있어 보이면 사서 구비해놓고 누가 오면 티를 주어야지 하는 영국인 할머니 마인드가 됐다고 해야 하나?
음식에 대해서도 참 많이 바뀌었다. 노 코리안도! (고수)를 공공연하게 외치던 나를 이제는 고수김치를 만들어봐야 하나?라고 할 정도로 고수의 맛에 푹 빠졌으며 대학교 시절 매일같이 어울리던 중국 친구들과 몇 년을 어울리면서 놀 때도 마라는 잘 모르겠어라고 했었다. 아직도 마라를 먹었던 첫날이 기억이 나는데 원래 부모님이 건강에 굉장히 조심하시는 스타일들이셔서 집에서도 원체 소금 간을 안 하고 먹던 나는 여기서 반 친구들과 차이나타운에서 진또배기 마라를 먹어보았다. 먹었을 때도 진짜 짜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얼굴이 퉁퉁 부어 쌍꺼풀이 모두 사라졌었다. 아직도 내 친구 한 명은 그때의 내 얼굴을 기억하며 낄낄거린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마라는 입에도 안 댔는데 친한 중국인 친구 생일 때도 가서 자리 차지하고 있얼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의 한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부터 이제는 '마라가 맛있어!'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건가?
이제야 마라 맛을 알게 된 나지만 영국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 영국 음식 맛없어'라는 사람들에게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영국 음식 러버가 되어버렸다. 선데이 로스트, 치킨 티카 마살라, 미트 파이 , 진저 피그에서 하는 소세 지롤과 매쉬 피와 타르타르소스를 올려먹는 맛있는 피시 앤 칩스까지. 영국인 전 남자 친구와 3년을 만나면서 영국 가정식들도 직접 접하고 만들어보기도 했었는데 정말 '엄마 음식'은 만국 공통으로 다 맛있는 것 같다.
지난 6년 동안 영국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패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 특성상 영국에서 생활하는 뭔가 직장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영국이 될 테지만, 20살 초반 열정 페이 받으면서 내 인생 이렇게 끝나나 싶어 도피성으로 모은 돈 탈탈 털어갔던 영국에 반해서 2달 만에 준비해서 영국 대학까지 온 나.
워홀은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코로나 이후 생긴 졸업 비자로 영국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나. 이건 내가 본 '영국' 그러니까 나의 버전의 영국이랄까? 늘 술자리 썰로 라테 이즈 홀스를 말하던 내가 이제 공공의 장소인 브런치로 나와 이런 나의 영국과 인생을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의 지난날처럼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별의별들이 다 있는데 겪어보시라고. 진짜 이건 뭔 개떡 같은 일인가 싶을 때도 있는데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러운 건 '경험'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