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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세 Jul 14. 2023

나는 밝은 사람이야 -1

근데 나는 왜 우울증을 앓고 있을까요?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걸 알고 난 뒤로 가장 명쾌했었던 것은 "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됐구나"였고, 가장 이해가 안 갔었던 부분은 "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지?" 였었다.




분명히 나의 행동과 모든 검사지는 나를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진단했지만, 나는 나를 그렇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나는 이렇게 밝은 사람인데? 요즘 내가 예전에 비해 활력이 없긴 하지만 그건 단지 그냥 요즘 좀 마음이 힘들고 지치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거 아닌가? 아니면 그냥 내가 조금 게을러졌나? 부모님 말씀대로 나태해져 버렸나? 근데 원래 사람들은 다 일하기 싫지 않나? 혹시 사실은 난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그냥 우는 소리가 하고 싶어 져서 지금 이러는 걸까? 그리고 요즘 우울증은 흔히 말하는 현대인의 감기라는데 나는 감기도 이겨내지 못할 만큼 나약한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에 아직 한국 사회에 있었다면 나는 아마 내가 우울증일 거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울증'이 주는 단어의 어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편견을 불러일으킨다. 

그 편견은 물론 남에게서 온 것도 있지만 나처럼 스스로가 이 병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해 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정신학적인 병들은 남들에게 내가 일반 감기에 걸렸다는 수준으로 고백하는 것은 아직 힘들뿐더러, 남들도 나를 그런 일반 내과, 이비인후과 병에 걸린 사람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일 테니.




나는 현재 영국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끔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자연스럽게 본인이 요즘 겪고 있는 이런 크고 작은 성격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에게 좋은 심리상담가를 추천해 주거나, 정신과 약에 대한 후기나 팁 같은 것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냥 아 이 친구도 지금 많이 힘들구나. 하며 다독거리고 넘길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나도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 친구는 이런 걸 막 이야기해도 되나? 나랑 엄청 친하다고 생각하는구나. 비밀인가?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가며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상처가 안 되는 걸까 하고. 그래서 내가 선택했었던 반응은 

 "네가?"라는 반응을 정말 많이 했었다. 너 그렇게 안 보여!라는 나름대로 '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었던 반응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 장염에 걸렸어.라고 했을 때 네가? 너 전혀 안 그래 보여. 너 아까 밥 잘 먹던데?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먼저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과연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믿을까?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친구들은 나는 밝고 명랑하며 낙천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으니까 물론 나 역시도 아직 스스로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지금은 내가 좀 아플 뿐. 




어쨌든 나는 이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나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고 이것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 케이스였던 것 같다.  




근데 사실 나는 나의 우울증이 언제부터 내 인생에 존재했었지는 그 시작점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청소년기부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지금과는 그 강도가 달랐을 뿐. 



 그때 나의 부모님은 굉장히 보수적이시면서 끊임없는 자기 검열로 주변인들에게 항상 사랑받으셨지만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 못했던 강철 같은 분들이셨기 때문에 당신들이 살아오신 강철 같은 인생을 나에게도 그대로 강요하셨었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과 닮아 나보단 남을 먼저 그리고 항상 '나'자신을 제일 마지막에 챙기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리고 나의 이번 우울증은 마치 그동안 자기를 왜 돌보지 않았냐며 내가 나에게 화를 내고 몰랐던 서러움을 토해내듯 강력히 와버린 것 같다. 




 나는 원래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추진력'이 좋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뛰어다녔었던 것 같다. 항상 내 마음속에는  나는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정말 열심히 산다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나'는 이상하리만치 늘 부족한 사람 같았다. 삼 년 내내 휴가 한번 못 가고 주 6일을 근무하다가 일을 이직하는 기간에 잠깐 한두 달을 쉬어도 무언가를 안 하고 쉬고 있는 나는 마치 아무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일을 오래 쉴 때면 편하게 맘 놓고 쉬는 게 아니라 더 큰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인생 내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그런 나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나는 어딘가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대기 시작했다. 매일 그렇지는 않았었지만 그냥 자주 가만히 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멈춰있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가만히 있는 시간이 좋거나 편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찌그러져서 없어질 거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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