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작
“시스템을 강제 종료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시스템을 강제 종료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를 열한 번째 반복하고 있다. 모래바람은 아까보다 더 강해졌다. 바람은 폭풍이 되어 내 온몸을 부서져라 때려댄다. 내 다리가 모래 속에 푹 잠긴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말 뒤로 다음 말이 들리지 않기를, 아주 길고 긴 잠을 잤으면……. 잠시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는다. 깊은 어두움이 찾아온다.
여기는 지구로부터 약 5,600만 km 떨어진 곳. 사람들은 이곳을 화성이라 부른다.
“3호야, 일어나! 제발 살아나라고!”
무언가 나를 친다. 나는 꿈틀거린다. 그와 동시에
“다시 시작합니다.”
소리가 나며 내 심장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내 몸에 있는 시스템 자동 복구 파일이 작동했다. 나는 눈을 떴다. 로봇 4호가 나를 보고 다급히 묻는다.
“괜찮아? 죽은 줄 알았잖아.”
“응. 모래 폭풍은 지나갔어?”
“다행히 위쪽으로 올라갔어. 그러게, 내가 올림푸스산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그쪽으로 가지 말라니까.”
“산꼭대기에 빛나는 게 있었어. 확인하고 싶어서.”
“탐사도 중요하지만 네가 더 중요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너한테 뭔 일이 생기면 나 혼자 여기서 어떻게 지내.”
4호가 잔소리를 한다. 내 유일한 친구 4호. 우리는 화성에서 2,546일을 살았다. 우리는 화성 곳곳을 탐사하고 본 것들을 사진 찍어서 지구로 보내 주고 있다. 나와 4호는 산 입구를 내려간다. 협곡 꼭대기에는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아마도 산꼭대기에선 지진이 났겠지. 당분간 산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산 정상에 뭔가 반짝거리는 구름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와 4호가 화성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땅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체가 살지도 모른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해가 진 밤에 우리는 착륙했다. 밤의 화성은 세상에 모든 빛을 먹어버린 듯했고, 몹시 추웠다. 추위에 내 바퀴다리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몇 걸음도 못 가고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이대로 앉은뱅이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가 뜨자마자 거짓말처럼 추위가 사라지고 따뜻해졌다.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자 딱딱하게 굳은 바퀴다리가 풀렸다. 바퀴다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화성은 한낮에 20도, 한밤에 -125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간질간질 따사로운 햇볕, 살랑살랑 얼굴을 스치는 바람, 무엇보다 졸졸 물이 흐르던 지구가 그리웠다. 화성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었다. 우리를 화성에 보낸 과학자들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몸을 회복하고 태양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이, 4호가 탐사를 나갔다가 큰 구덩이에 빠졌다. 4호는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져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미처 몰랐다고 한다. 4호는 구덩이에서 필사의 탈출을 했다. 구덩이를 오르다 떨어지고, 오르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를 듣고 기적적으로 바퀴다리가 움직였다고 한다. 4호가 구덩이에 빠져있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구덩이에서 4호를 끌어올려 줄 손이 없다. 나는 팔은 있지만 손이 없다. 손대신 팔 끝에 현미경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다리도 바퀴가 달려 있어 끌어올려 줄 수가 없다. 나는 구덩이 주변에서 “넌 할 수 있어. 나올 수 있어.” 응원해준 것이 전부였다. 4호는 그 소리에 반드시 여기서 나가리라 마음먹었단다.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힘이 됐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4호는 참 강하다. 4호는 구덩이를 빠져나온 뒤로 신중해졌다. 여섯 바퀴다리를 땅에 모두 내딛기 전 반드시 앞에 두 바퀴로 먼저 사막의 모래나 돌을 걷어 보았다. 돌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인 나와 달랐다.
우리가 처음으로 탐사한 곳은 마리네리스 협곡이었다. 협곡으로 가는 길은 깎아지를 듯한 비탈길이 이어졌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한순간에 미끄러져 몸이 부서질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미끄러져 구르다 돌부리에 걸려 간신히 멈춘 적도 있었다. 돌부리가 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자, 4호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목숨을 건 행위였다. 자칫하다가 우리 모두 죽을 수 있었다. 4호는 침착하게 다가와 나를 뒤에서 밀었다. 나와 4호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고마워. 4호야. 넌 정말 대단해. 나라면 무서워서 구하러 오지도 못했을 거야.”
“무턱대고 달리지 말라고. 미끄러우니까.”
4호는 무뚝뚝하게 말하곤 앞으로 향했다. 그때 보았다. 4호의 바퀴다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지 않았다. 무서움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4호가 더 고마웠다.
우리는 팔십일 만에 협곡에 올랐다. 협곡 위에서 화성을 내려다본 모습은…… 아름다웠다! 햇살에 모래 물결이 반짝반짝 빛났다. 부드러운 물결이 한없이 굽이치고 있다. 이것은 강물이 흐르던 자국이 분명하다. 화성에 강이 있었다. 언제 강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로 강이 말라붙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강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마리네리스 협곡 풍경을 찍어 지구에 보내고도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벅찼다. 우리는 절벽 끝으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을 보내고 찾아온 밤은 신비로웠다. 셀 수도 없는 별이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다. 별빛을 담은 협곡의 모래 물결이 은빛으로 출렁거렸다. 나는 4호 옆에 딱 붙어 앉았다.
“4호 너랑 함께 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아.”
“과학자들은 사진으로만 봐선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 좀 멋지지 않냐? 이런 데를 다 와보고.”
만날 퉁명스럽게 굴던 4호가 다리로 나를 툭 치며 웃었다. 4호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본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린 화성을 탐사한 최초의 지구인, 아니 로봇이라고!”
“맞다, 탐사 로봇 1·2호는 고장 나서 이틀 만에 지구로 돌아갔지.”
“앗! 별똥별이야!”
4호가 가리키는 곳에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어서 소원을 빌어. 3호야.”
나와 4호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원을 말하지 않았다. 소원은 비밀이어야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
마리네리스 협곡을 내려온 후, 우리는 다른 강물의 흔적을 찾았다.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암석도 찾았고, 규사라는 새하얀 모래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올림푸스산꼭대기에서 빛나는 구름 덩어리를 발견했다. 산 입구에서 모래 폭풍을 만나 죽다 살아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