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1.
염색. 머리숱을 얻었으나 새치는 피해 가지 못했다. 탈모약을 먹으며 아침에 일어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졌는지 체크해 보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구멍 하나에서 3가닥 씩 나오나 싶을 정도로 나의 머리숱은 엄청나다.
동안 소리를 들을 때마다 머리숱에 감사하고 엄마에게 감사하면서도, 염색체가 살짝 삐끗했는지 하얗게 자란 새치를 볼 때면 아쉽다. 그렇다 나는 24살부터 흰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고로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는데, 어렵진 않으나 나에겐 너무도 귀찮은 일이다.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해도 되지만, 없는 살림에 술 쳐 먹는 것은 안 아까워도 전문 기술을 가진 미용사들이 정성스럽게 해주는 염색은 그렇게 아까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틀려먹은 건 알지만 누구나 이런 옹졸한 포인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올리브영으로 향한다.
(사이즈가 죽을 때까지 혼자해야 할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2MgrE2ya4LM
2.
할머니 없는 할머니 생일파티. 할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큰 삼촌댁에 온 가족이 모이기로 하였다. 갈까 말까 수번을 고민하였으나 세상에 태어난 지 60일 밖에 안된 조카가 온다길래 냉큼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가까운 곳을 돌아 돌아 도착하였다. 동네를 대표하는 길치로서 조금 헤맬지언정 남들보다 여유롭고 (빨리 나와야 하기에)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라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집에서 삼촌댁까지 가는 1시간 동안 전화가 4 통이 나왔다. 내가 성화봉송 주자도 아니고 거창한 행사를 주도해야 하는 역할도 아닌데 말이다. 나의 안위보단 내가 '왜' 늦는가가 궁금한 것 같다. 여하튼 돌고 돌아 삼촌댁에 도착하였다.
역세권, 신축, 고층, 브랜드 등 모든 것을 갖춘 아파트였다. 이런 아파트는 얼마나 할까 싶으면서, '과연 나는 이런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 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런 생각은 두더지 마냥 막는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열심히 살면 되겠지란 낭만적인 생각을 이미 반려 꼽등이 중 한 마리와 함께 변기에 내려보냈기에 자괴감 따윈 들지 않았다.
도착한 삼촌댁엔 이미 가족들이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할머니 생신이셔서 모인 거라고 했는데 할머니만 안 계신 것이다. 홍철 없는 홍철 팀도 아니고, 주인공이 없는 생일파티라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서운하셨던 할머니는 본인을 위한 자리임에도 돌연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그렇게 할머니 없는 할머니를 위한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다.
케이크도 자르고 좋은 커피도 마시며 서로의 근황도 묻고 늘 그랬듯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그런지 시간은 금세 흘렀고, 할머니의 존재는 사라진채 안부를 전하며 각자의 장소로 흩어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 오늘의 상황을 생각해 보니 웃기면서도 어이 없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곧장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옷을 정리했다. 그리고 방에 돌아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패스워드가 걸려있는 윈도 화면을 보았다. "내가 뭘 하려고 했었지?" 컴퓨터는 이미 켜져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였으나 내가 뭘 하려고 컴퓨터를 켰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켜져' 있었기에 늘 그랬듯 아무 '의미'없이 유튜브를 보고 웹서핑을 했다. 생각보다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분명 무언가 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고 사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