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 2
1.
The Different. 작년 여름과 가을 그간 나의 연애가 힘들어 보였는지, 헤어진 이후 주변 지인들은 앞다투어 소개팅 주선자가 되길 자처하였다. 딱히 누군가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여력도 없었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몇 차례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그중 연상의 어떤 여성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갖지 못한 과분할 정도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말하면 알만한 기업에 중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서울 중심부에 아파트를 한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조건이 중요하겠냐만은 "아니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세상에 속해 살고 있다. 그런대로 인정하며 누군가 "나는 그렇게 속물스러운 사람 아니야, 나는 사랑만을 쫓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애석하게도 그것 또한 만용이라 생각할 것 같다.
반지하에서 서로를 탐닉하며 라면만 먹고살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 길며, 이 사회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 게의르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조건이 '능력'이라고 묻는다면 '낭만의 시대'를 살아왔기에 단연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나, 애석하게도(?) 나는 이 사회에서 쥐뿔 가진 것 없는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당의 한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쥐뿔 잘난 것도 없지만, 어떤 누군가와 연인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한순간에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관계에 있어 찰나의 끌림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며,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라 믿기에 나에게 그 찰나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단 이야기를 개떡 같은 소리로 포장하였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그러하다.
그분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나름 사회화가 잘된 나는 슈퍼 아싸임을 감추고 어색한 분위기를 뭉그러뜨리러 필사의 노력을 했다. 물론 우리는 서로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임 직감했다. 그럼에도 사회화가 잘 이루어진 그녀와 나는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맥주 한잔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작은 질문에서 발생했다. 공통의 관심사가 없었던 그녀와의 대화를 이끌어 가고자 나름 파란만장했던 과거의 썰들을 조금 흘리며 나는 말했다.
"저는 이래저래 어릴 때부터 풍파가 많았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자 그녀는,
"저는 정말로 아무런 우여곡절도 작은 파고도 없이 살아온 것 같아요."
교통카드를 잘못 찍어서 요금이 두 번 나가도 내 인생은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본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정말로 삶이 무난했던 건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며 무던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알 순 없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처음 봤기에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나에겐 인생의 큰 사건들 외에도 누군가와 만났고 헤어지고, 상처 주고 화해하는 모든 일련의 일들이 우여곡절이고 나이테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녀에겐 아니었나 보다. 물론 각자 생각의 크기가 다른 것이겠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누구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스쳐 지나가는 대답이었겠지만 외계인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맥주를 3잔 마셨고, 그녀는 2잔을 마셨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녀는 이미 계산을 해두었고 술집을 나와 우리는 멋쩍게 인사한 후 헤어졌다. 아마도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근본적으로 나와 달랐던, 그녀의 대답은 계속해서 기억날 것 같다.
2.
진실. 기꺼이 침대를 양보해 줄 수 있는 친한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처음 그녀들을 만났을 땐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들이었으나 지금은 마냥 억척스럽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간의 회포를 풀듯 끝이 없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떠들어 댔다.
그러던 중 결혼한 친구 하나가 본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본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고백하였다. 그 친구의 배우자는 나와도 여러 번 만난 동갑내기로 아주 바르고 성실한 친구였으며, 사회적으로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친구는 본인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이성에 대해 편견이 있다고 고백하였는데,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런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하였다. 본인의 편견은 굉장히 강해 편부모 밑에서 자랐단 사실을 알게 되면, 프레임 안에 가두고 그 사람을 보게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추측건대 그 친구는 그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어떤 이벤트'를 겪었거나 부모 또는 형제에게 학습된 나머지 그런 편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은 스스로 성장함에 있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에게 그 편견을 '관철'시키고 타인에게 폭력적이지 않다면 그 또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믿고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그 친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두 부모에게 사랑받은 꼬여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런 사람들만 본인 주변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본인이 만난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만났을 때 늘 무언가 꼬여 있는 느낌이었으며, 그로 인해 늘 관계가 삐걱였다고 한다.
"내가 이야기 안 했나? 나는 엄마 밖에 안 계시고, 지금은 재혼하셨다고"
나는 자신의 편견을 이야기하는 그 친구에게 나의 이야기하였다. 자주 보지 못하지만 친구로서 오랜 시간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의지하며 스스럼없는 사이였다.
그 친구는 적잖이 당황했고 어쩔 줄 몰라했다.
"거짓말이야"
진실을 감춰 둔 채 나는 그 친구에게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며,
"순간 내가 달라 보였어?"라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당황한 마음이 추스러지지 않는지 횡설수설하였고, 나는 그냥 웃었다. 이후 우리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하이볼을 마셨고, 다음날 같이 중국집에서 해장한 후 헤어졌다. 놀랍게도 여전히 우린 친구고 예전이랑 별다를 것 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3.
새 학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두 개의 대학교가 있다.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또 다른 대학교 하나 있을 정도로 우리 동네에는 맹자도 울고 갈 정도로 대학교가 많다. 고로 대학생들도 엄청나게 많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가 무색할 정도로 갓 잼민 이를 벗어난 수많은 친구들이 술집 앞을 기웃거리는데,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인생 다산듯 한 아재의 포스를 풍기며 그들을 지나친다.
특히 학기가 시작하는 이 시즌이 오면 개총이다 뭐 다해서 동네 곳곳이 시끌시끌하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풋풋하고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 하루하루 버텨내고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다. 그런 그들에게 아저씨처럼 보다 더 철딱서니 없이 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물론 아저씨처럼 지 앞가림도 잘 못하는 게 아닌 지 앞가림은 잘하면서. (꼰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