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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라리 Jul 26. 2023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게임이 더 많이 등장하려면?

스포일러와 게임

스포일러가 경험을 돕다.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우연히 영화 '기적'의 요약 영상을 봤다. 10분이 좀 넘는 분량이었다. 결말까지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 알게 됐다. 나는 영화 볼 시간에 게임을 하는 사람이기에, 영화 스포일러는 개의치 않았다. 수개월 후, 태백에 놀러 갔다가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게 됐다. 경북 봉화군을 지나던 중 양원역에서 정차했다. 아주 작은 간이역이었는데, 벽면에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된 장소라는 홍보 포스터가 있었다. 몇 달 전에 스치듯 봤던 영화 요약 영상이 떠올랐다. "아 여기 박정민하고 윤아 나오는 영화에 나왔던 곳인데". 사실 제목도 까먹고 있었는데 홍보 포스터를 보고 기억났다. 기차여행을 하는 이유는 기차의 낭만과 주변 자연환경을 보는 정도지 기차역에 주목해 본 적 은 없었다. 요약 영상을 잠깐 봤을 뿐인데,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기차역과 그 주변 환경을 머리와 마음에 열심히 담아뒀다. 여행이 끝나고 집 가면 전체 영화를 보리라 다짐했다. 며칠 후, 쉬는 날 영화 '기적'을 봤다. 영화에 내가 아는 장소가 나오니 더 몰입이 됐다. 분위기와 풍경이 그려지면서 영화의 배경, 주인공의 선택 등이 더 잘 이해되고 공감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현장탐방을 다녀 온 후 영화를 감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포일러 영상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예고편만 봤으면 아마 까먹었을 것 같다)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일까?


올 해 4월에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스포일러에 대해 다뤘다. 스포일러의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다룬다. 흥미롭게 봤다.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스포일러에 대한 아주 예민한 사람 중에는, 제목만 말해도 스포일러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ex. 쇼생크 탈출) 반대로 스포일러에 전혀 상관없어하는, 오히려 평론가들의 해설을 다 보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포일러에 예민한 사람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해진다. 이동진 평론가는 스포일러에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사람들이 80~90% 예민한 정도까지는 배려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100명 중 80~90명은 스포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10~20명이 스포라고 생각하면 하면 안 되는 정도이다. 그럼 아예 아무런 정보도 노출되지 않게 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 해보면 정보가 있어야 선택할 수 있다. 제목(주제 또는 소재)이 무엇인지, 감독은 누구인지, 출연하는 배우는 누구인지 등을  알아야 영화를 보고 싶어 진다. 보통은 예고편과 시놉시스에 있는 내용까지는 선택에 필요한 정보라고 인식한다. 스포일러에 덜 민감할 수록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비교적 스포일러에 안전한 게임


게임은 특별하다. 게임은 보는 콘텐츠보다 더 많은 감각이 쓰이는 경험하는 콘텐츠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진행, 퍼즐, 기믹 등 다른 요소들에도 스포일러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의 범위가 광범위하다. (물론 스포일러와 전혀 상관없는 장르도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생각을 빌려오면, 80~90% 예민한 정도까지는 배려해야 한다. 보는 콘텐츠는 '예고편과 시놉시스에 나온 내용 정도'로 공개해도 되는 정보의 대략적인 경계가 있지만 게임은 불가능하다. 게이머들마다 게임의 스포일러로 여기는 요소들이 다를 수 있다. 대게 스토리는 공통적으로 스포일러로 여기지만 게임 진행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공략을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필요한 것만 보는 사람, 절대 보면 안되는 사람 등 복잡하다. 그래서 그런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보수적으로 '스포일러' 경고를 표시하는 것 같다. 나는 게임 스포일러에 예민한 편인데, 지금까지 내가 하려고 마음 먹은 게임에 대해서 악의적인 스포일러를 당한 적은 없다. 정보를 찾아볼 때 '스포일러' 말머리가 있는 것을 놓치지만 않으면 스포일러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수백만 명부터 천만명이 넘게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영화는, sns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스포일러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같은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스포일러를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 아닐까?

(게임 스트리밍 방송에서 누군가 스포일링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논외로 넘어가자) 


나쁜 평가가 게임의 경험을 막을 수 있다.


게임은 디지털 콘텐츠 중 가장 지갑장벽이 높다. 제일 비싸다. 보는 콘텐츠만큼 구독 모델이 잘 되어 있지도 않고 과금 유도를 많이 하는 게임도 많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디지털전환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를 보면, '디지털 콘텐츠 평균 지불 금액' 1위는 게임이다. (한달 평균 게임 18,386원, 온라인 도서 13,816원, 온라인 동영상 13,212원, 온라인 음악 7,300원, 웹툰 6,182원, 이모티콘/캐릭터 3,717원) 물론 시간 대비 가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은 구매를 망설이게 만든다. 거금을 주고 구매했는데 재미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게임에 대한 평가는 누군가 게임을 하거나 못 하게 하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보통 상대적으로 하게 만들 때 보다 못하게 막을 때 더 강력하게 작동할 것이다. 게임의 구매 구조는 필연적으로 나쁜 평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게임에서의 평가는 게임의 경험을 아예 못하게 막는 넓은 의미의 스포일링(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콘텐츠와 다르게 게임의 평가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오히려 매운 평가가 다른 게이머들의 지갑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게이머들이 바보도 아니고 각자 알아서 나름대로 현명하게 판단했으니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다들 나름대로 자기 판단을 한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평가가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이 등장하기 훨씬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새로운 시도, 생소한 경험을 담은 게임이 있다고 했을 때, 혹시나 샀는데 망겜일까봐 게이머는 더욱 구매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좋지 않은 리뷰가 몇 개는 그 게임의 구매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스팀의 경우 플레이 타임 2시간 이내라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환불정책은 게이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끌리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캐주얼 게임이 아니고서야 해당 게임의 새로운 점이 뭔지 알리고, 게이머를 설득해 내기에 2시간은 매우 부족하다.  <2022 게임백서> 에 따르면, 게이머들의 PC게임의 이용시간은 평일 평균 1시간 30분, 주말 2시간 30분 정도고, 콘솔게임 이용시간은 평일 평균 1시간, 주말 2시간 정도다. 대부분의 게이머라면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대략 10시간 정도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게이머가 좋아하는 시리즈, 제작사, 기대작도 다 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을 찾아보고, 플레이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게임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도 같이 평가하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임들이 좀 더 많이 선택받아서 게임 생태계가 더 다양해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업계 사람도 아니고 이러쿵저러쿵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한 명의 게이머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봤다. 게임 리뷰를 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신경을 쓰는 방법이다.


나쁜 리뷰는 게임의 경험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좋은 평가만 하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의 자유다. 다만 해당 게임이 게이머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시도하고 있는점'에 대해서도 함께 평가했으면 한다. 다시 말해, 예술성(영화에서 주로 쓰는 그 단어다.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빌려서 쓴다)을 평가 기준으로 하나 추가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예술성에 대해서 더 가중치를 두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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