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경험이 배움이 되게 하려면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게임이라고 하고 있는지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게임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가위바위보'부터, 실뜨기, 수건 돌리기, 윷놀이, 화투, 스타크래프트, 롤, 모바일 게임 등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 정의에 만족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얘기하고 있다. 다만 배움의 원리와 쉽게 연결하기 위해서, C. 티 응우옌 유타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제시한 게임 규정을 빌려 쓰겠다.
* 세 종류의 게임 규정
① 파티 게임
- 장기적인 기술 향상이 중요하지 않거나 그것을 일부로 억제한다.
- 임의성, 무기술성, 의도적 혼란 등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② 고도 전략게임
- 플레이가 반복된 이후 그리고 현저한 기술 향상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고 이치에 맞게 된다.
- 플레이어는 게임을 연구하고, 새로운 전략을 고안하며, 이를 다른 사람과 의논하여 많은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정복한다.
③ 커뮤니티 진화 게임
- 복수의 플레이를 요구하면서, 작품과의 적절한 만남을 위해서는 '더 큰 플레이어 커뮤니티에 참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 플레이어가 게임 커뮤니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보기 전까지는, 이러한 게임의 중심 특성은 아직 이해될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잠복기의 상태이다.
파티 게임은 승리가 목적이 아니어도 재밌을 수 있는 게임이다. 대개 바보게임(이기기 위해서는 전력으로 플레이해야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핵심은 실패에 있는 게임)이지만 예외도 있다. 디지털 게임으로는 어몽어스, 오버쿡이 떠오르고, 보드게임으로는 달무티, 뱅, 사보타지, 스파이폴, 텔레스트레이션 등등 엄청 많다. 술게임이라고 하든 것들도 대부분 파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 전략게임과 커뮤니티 진화 게임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반복된 플레이를 통해 실력을 길러 승리(또는 클리어)하는 게 목적이다. 커뮤니티 진화 게임은 이름처럼 커뮤니티가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임을 말한다. 커뮤니티의 의견이 주기적으로 실제 게임 메타에 반영되는 게임들이다. 밸런스를 맞추는 패치의 역할도 하지만 게임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롤이나 하스스톤, 안드로이드 : 렛러너(보드게임)가 있다. 고도 전략게임은 파티 게임과 커뮤니티 진화게임에 해당되지 않는 대부분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 꼭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 '다른 것은 대학 이후로 미루고 입시 준비에 올인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대학 입시 준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청소년시기에 꼭 배워야 하는 게 있다'라는 생각을 전제로 얘기하겠다.
"청소년 시기에 꼭 배워야 하는 것을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나름의 답변이 있을 것이다. 살면서 저마다 '이걸 배웠어야 했어.' 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몇 년 전부터는 코딩이 유행이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청년까지 코딩을 배워 IT회사에 취직하여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꿈꾼다. 적성에 맞고 능력이 되는 소수만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현재의 시점에서 잘 나가는 분야나 능력을 이야기한다. 근데 그게 앞으로도 유망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인류의 삶이 크게 바뀔 거라는 것을 예측한 사람이 있나?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환경운동가나 생태학자들이 했을 수는 있다. 적어도 경제와 산업 전문가들은 아니었다. Chat-GPT가 나오면서 경제계와 산업계는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며 또 다른 유행을 만들고 있다. Chat-GPT는 코딩도 잘한다. 소수의 뛰어난 중간관리자만 빼고 그동안 열심히 코딩을 배우던 사람들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답변으로는 지성, 감수성, 사회성, 인성, 시민성 등이 나온다. 정말 중요한 자질들이다. 그런데 청소년 시기에 완성할 수 있는 자질들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인생 전체에 걸쳐서 추구해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 꼭 배워야 하는 것은 특정한 능력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이런 태도야!'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을 신뢰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배움에 열려 있으며, 삶에 대한 기대를 갖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살면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에 의해 꺾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건 10~20대 시기의 특권이다. 이 때가 아니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열한 태도들 중에서 첫 시작은 배움에 열려 있는 것이다. 호기심도 배워야 넓어지고, 배움을 통해 작은 성취를 해 냈을 때 자신을 신뢰하게 되고 삶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경험이 배움이 되게 하려면
배움은 '시간성'을 체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소수의 청소년들만 교과공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시간성'을 배울 수 있다.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또 어떤 기회가 있을까? 많은 청소년들이 취미로 즐기는 '게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과거에는 게임이 교육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해졌다. 마침 게임은 '시간성'을 체득하는 데 꽤나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도 전략게임'(ex.젤다의 전설)과 '커뮤니티 진화 게임'(ex.롤)은 처음에는 거의 모르는 상태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쓰면, 점점 숙련도가 높아져서 실력이 쌓인다.
"그렇게 따지면 웬만한 거는 다 배우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궁금하실 것 같다. 이전 글에서 배움은 '어렴풋하게 알지만 완전히는 모를 때, 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쓰면 배우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할 때' 성립한다고 했다.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우면 배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쓰면 배우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할 때'이다.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적절한 시간이 달라진다. 자신이 이것을 배우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써야 가능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계산할 필요는 없지만 차이가 너무 크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안학교에는 다양한 배움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수업, 체험, 프로젝트(개인/팀), 소모임 등이 있는데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인 프로젝트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목표와 계획을 세워 수행하는 활동이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목표 설정, 계획, 수행을 친구, 교사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한 학기 지나고 평가를 해보면 스스로 개인 프로젝트를 잘했다고 하는 청소년은 10명 중 1~2명 밖에 안된다. 그 이유는 대부분 주어진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지 못해서이다. 자주 실패하는 사례는 음악 작곡이다. 한 학기 동안 미디와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혀서 맘에 드는 비트를 찍어보겠다 또는 가사를 쓰고 코드진행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음원사이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인기곡들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의 예술성이 발휘되어 만든 것이다. 이 노래들이 이른바 '좋은 음악'의 기준이 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청소년이 아니고서야 한 학기만에 '좋은 음악'에 근접하는 퀄리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교육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패를 배움으로 해석하면 된다. 다음에 다시 도전한다면 멘토의 도움을 받든지, 적은 시간에 달성할 수 있는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
이렇듯 시간에 따른 성취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청소년들은 특히 비교적 시작과 끝이 명확한 것을 하는 게 좋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대결을 통해 승패와 성취가 결정나는, 상대평가와 비슷한 '커뮤니티 진화 게임'(ex.롤)보다는 게임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오로지 나의 노력에 따라서 성취할 수 있는 절대평가와 비슷한 '고도 전략게임'(ex.젤다의 전설)이 '시간성'을 체득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렇다면 적절한 시간의 고도 전략 게임을 하면 다 '시간성'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일까? 적절하게 레벨디자인이 된 게임이라고 가정할 때, 배움의 여부는 '교육적인 해석'에 달려있다. 같은 행위를 했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앞의 음악 작곡 예시를 다시 보자. 다른 조건은 모두 같고 한 명은 집에서 혼자서 했고, 다른 한 명은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했다고 하자. 집에서 혼자 시도했다가 실패한 청소년은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할까? '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쉬운 게 아니네. 나는 작곡가는 못되겠다. 그냥 듣기만 해야지' 이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뭐가 부족했는지, 앞으로 뭘 더 준비해야 할지 생각할 것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참여한 청소년은 친구들과 교사의 도움으로 훨씬 더 교육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기획(목표, 계획)과 실행 적절했는지 복기하고 친구들의 사례에 비추어 나의 성패의 원인을 분석해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전체가 배움이었다고 규정하는 데 있다. 혼자서는 '음악 작곡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교육적으로 해석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실패의 경험도 배움이 될 수 있다. (교사의 역할은 교육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마찬가지다. 고도 전략 게임을 하고 나서 남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별한 해석을 하지 않는다면 '재밌었다' 또는 '재미없었다'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알고 익힌 것을 해석해 낼 수 있다면 달라진다. 시간을 쓰는 만큼 케릭터가 성장하듯, 게이머인 나 또한 숙련도가 늘고 게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저 재미에 그치는 게 아닌 의미가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 게임의 경험 또한 해석에 따라서 배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다음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