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라리 Jul 31. 2023

청소년 게임 중독이 아니라, 게임 문화의 부재가 문제다

‘인생게임 캠페인’을 제안하며

청소년이 게임 중독자라면, 온 국민이 게임 중독자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게임 중독’은 오랜 화두다. 나는 청소년 시절 그런 소리를 들은 당사자이다. 고등학생 때 잠을 깬다는 핑계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게임을 했다. 심지어 시험공부 도중에도 틈틈이 게임을 했다. 입시에 매달리는 동안 게임은 숨 막히는 일상의 숨구멍이었다. 입시의 터널을 지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게임을 한다. 오히려 청소년 시기 때 보다 더 많이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게임 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게임 마니아 정도로 불릴 뿐이다.

  성인과 청소년의 모바일게임 이용빈도 및 이용시간을 각각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모바일게임 이용빈도를 비교하겠다. 전체 성인의 48~55%가 주 4~5일 이상 게임을 한다(20대 48%, 30대 54%, 40대 55%, 50대 55%). 전체 청소년의 51%가 주 4~5일 이상 게임을 한다.

  다음으로, 모바일게임 이용시간을 비교하겠다. 성인의 경우, 평일 게임시간 평균은 85분~78분이고(20대 85분, 30대 88분, 40대 86분, 50대 78분), 주말 게임시간 평균은 104~121분이다(20대 121분, 30대 123분, 40대 127분, 50대 104분). 청소년의 경우  평일 게임시간 평균은 66분이고, 주말 게임시간 평균은 118분이다.

  이처럼 성인과 청소년의 모바일 게임 이용시간 및 이용빈도는 전반적으로 비슷하거나, 오히려 성인의 수치가 더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만약 청소년이 게임 중독이라면, 온 국민이 게임 중독을 걱정해야 한다. 물론, 게임이용문제 진단 결과, 청소년 게임 이용자의 4%는 문제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나타나 보호자와 교사의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며 전문적인 상담 개입이 요구된다. (한국교육개발원, 2023). 그러나 96%의 청소년은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청소년이 성인이 되면, 취미가 게임인 것은 문제가 아니다. 유독 청소년 시기에만 게임 중독이 문제로 여겨지는 이유는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게임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에 관한 우려는 객관적인 수치로 입증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이 개입된 것이다.



청소년이 게임밖에 할 게 없는 현실이 문제


  청소년이 게임밖에 할 게 없는 현실이 문제다. 청소년은 성인과 달리, 지나치게 게임‘만’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참여한 여가활동의 종류는 연령별로 차이가 있다. 아래 <표1>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여가활동 시간 중 게임을 선택하는 비율은 줄어든다. (15~19세 58%, 20대 45%, 30대 29%, 40대 14%)


<표1>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참여한 여가활동 (복수응답, 상위 10개, 1+2+3+4+5순위)

(출처: 국민 여가활동 조사, 2022)

  또 다른 문제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이다. 아래 <표2>에 따르면, 77%(상위 1위~3위)의 청소년이 재미, 시간 보내기, 스트레스 풀기 위해 게임을 한다고 답했다.


<표2> 청소년이 게임을 하는 이유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성인들은 여가 활동 시간 동안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세상에는 재밌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이 게임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청소년들은 여가 활동 시간의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내고 있다. 게임은 가장 손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게임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와 한계


  지난 10년 동안 청소년 대상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나는 학생들의 동기 유발을 위해 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 활동을 시도했다. 디지털 게임을 활용하고 싶었으나, 도전적인 교육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려웠다. 1년이라는 시간은 플레이 위주로 진행하기에는 긴 시간이고, 게임을 만들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논의 끝에 보드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세.나.게(세상에 나쁜 게임은 없다) 프로젝트 활동> 교육목표

첫째, 즐거운 재미를 넘어 도전의 재미, 보람의 재미도 느껴보자!
둘째, 재미 소비자를 넘어 감동 생산자가 되자!
셋째, 인생의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주체적인 사람이 되자!


  위의 세 가지 교육목표를 가지고, 세.나.게(세상에 나쁜 게임은 없다) 프로젝트 활동을 총 세 차례 진행했다(2018~2020년). 매년 36차시(주 1회, 8시간) 동안 학생들은 보드게임의 기획, 디자인, 제작, 테스트 및 밸런스 조정까지 직접 참여했다. 학년 말이 되면 총 2개의 게임을 제작할 수 있었다. 학생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로젝트에 대한 만족도는?”의 질문에 대해 학생들은 5점 만점에 평균 4.6점으로 응답했다. 또한 활동에 참여한 서○○ 학생은 “원래는 게임의 재미만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제작자의 관점이 생겼다. 이렇게 하면 더 재밌을 텐데, 이 시스템은 왜 넣은 걸까 생각하게 된다.”며, 프로젝트 활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교사로서, 개인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게임 문화를 바꾸지는 못했다. 아무리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일지라도, 보드게임보다는 디지털 게임을 더 선호했다. 모바일게임이 훨씬 더 빠르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청소년의 모바일 게임 이용 문화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게임 문화가 바뀌어야 청소년 게임 문화가 바뀐다


게임은 전 국민의 74%가 할 정도로 대중화되었으며, 게임 산업은 20조를 넘어설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하지만 여전히 ‘게임은 문화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게임 전문 기자는 ‘한국에서의 문화 인식 싸움이 힘든 이유’를 ‘과도한 교육열에서 비롯된 게임을 향한 적대심과 열악한 청소년 환경 속에서 나오는 게임으로의 도피 현상’과 ‘한국 게임 계의 빈약한 문화예술 연구와 빈약한 결과물’ 때문이라고 분석한다.(길용찬, 2019)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놀이로 인식하며, ‘게임은 문화다’는 말은 낯설게 느낄 것이다. 게이머들은 게임의 재미 유무 외에, 게임의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게임의 문화적 위상이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는 청소년 게임 문화 또한 변화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문화로 인식하려면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종의 게임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  



‘인생게임 캠페인’이 나아가야 할 세 가지 방향


‘인생게임 캠페인’은 게임이 자신에게 준 ‘의미’ 혹은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이다. 구체적으로, 게이머들 각자가 이용하는 커뮤니티 혹은 플랫폼에서 평소보다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리뷰를 남기는 활동이다. 이 캠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인생게임 캠페인’의 주체는 일반 게이머여야 한다. 게임은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고,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콘텐츠다. 영화나 문학은 평론가가 가장 많이 보고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게임은 플레이타임이 길기 때문에 평론가보다 게임을 더 많이 플레이해보고, 게임에 대해 더 잘 아는 게이머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게이머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한다면, 평론가 못지않게 수준 높은 내용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인생게임 캠페인’에서 게임 리뷰를 공유할 때 재미뿐만 아니라 게임을 통해 얻게 된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인생에 길이 남을 만큼 잘 만든 게임을 ‘인생게임’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2016) ‘인생게임’에는 매력적인 캐릭터, 감동적인 스토리, 성취감, 교훈, 새로운 경험 등 재미 이상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인생게임 캠페인’ 안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셋째, ‘인생게임 캠페인’을 진행할 때, 게임 리뷰 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어야 한다. 만약 ‘게임을 통해 얻은 배움 소개하기’ 또는 ‘새로운 경험 알리기’ 등으로 주제를 한정 짓는다면, 사람들의 참여율이 낮아질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없앰으로써 사람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록 게임 문화의 파급력이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생게임 캠페인’ 게임 리뷰 내용의 다양성과 깊이는 집단 지성이 모여 차차 발전할 것이다.



‘인생게임 캠페인’의 예시: 하데스 게임 리뷰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므로 위의 세 가지 방향에 따라 게임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인생게임 #로그라이크 #그리스신화 #성취감 #청소년추천게임 #가족추천게임

하데스는 제 인생게임 중 하나입니다. 재미는 물론이고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추천이유 1. 성취감

  저는 똥손이지만 도전을 좋아하는 불행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무조건 첫 번째 엔딩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공략을 보지 않는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도 타고났습니다. 저에게 쉬운 게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진행하여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에게 가장 힘든 것은 소울게임입니다. 반복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 피지컬을 탓에, 반복된 죽음에서 오는 짜증이 인내심을 넘어서면서 소울게임은 엔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하데스를 시작했습니다. 카툰 그래픽 때문인지, 괜히 쉬울 것 같아 게임을 만만히 봤습니다. 계속해서 5분 컷으로 죽고 스테이지1을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쓸데없는 자존심상, 초보자를 위한 ‘신모드’를 켜지는 않았습니다.)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만 그래도 ‘어둠’은 남았습니다. 5분 컷 당하더라도 조금씩 어둠을 모아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 둘 스테이지를 깨고 엔딩을 봤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똥손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면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게임입니다.

추천이유 2.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서양문화에는 왠지 몰입이 안 됐습니다. 이름들이 너무 길고 익숙하지 않아서 외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1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하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게임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주인공(하데스의 아들 자그레우스)이 인연을 맺게 되는 다양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등장인물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왜 죽지 않는지, 가족 관계는 왜 이렇게 됐는지, 배경 디자인은 왜 이런지 알고 싶어 졌고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서 궁금한 내용들을 조금씩 알아 갈 수 있게 디자인해 놓은 스토리 연출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아쉬운 점 : 반복적인 게임플레이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지하세계에서 지상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토리를 알아가고, 강해지고, 다양한 무기를 얻고, 꾸미고, 수집하게 됩니다. 반복적인 게임플레이를 싫어하시는 분은 금방 질리실 수 있습니다.



‘인생게임 캠페인’이 청소년의 게임 리터러시 향상에 미치는 효과


최근 청소년들은 어렸을 때부터 게임과 함께 성장해 왔다. 따라서 수많은 게임 중에 좋은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어야 한다.

게임 세대에게 게임은 놀이이자 의사소통 활동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 활동이며, 그 세대만의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을 형성해주는 매개물이다. 이런 게임 세대에게 게임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성찰하는 능력, 게임을 통해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바로 게임 리터러시가 지향하는 핵심이다. (전경란, 2014)


‘인생게임 캠페인’은 게임 리터러시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시태그 캠페인을 제안할 수 있다. 게이머들이 리뷰를 쓸 때, 청소년들이 해도 좋을만한 게임에 ‘#청소년추천게임’을 붙인다. 자녀와 함께해도 좋을만한 게임에는 ‘#가족추천게임’을 붙일 수도 있다. 이 해시태그 캠페인이 활성화된다면, 사람들의 교차 검증 통해 좋은 게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마련될 것이다.


<그림1> 자녀와 함께 게임 이용 여부

(출처: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위의 <그림1>에 따르면, 취학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하는 부모의 비율은 59%이다.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기왕이면 자녀가 더 좋은 게임을 경험하기를 바랄 것이다. 부모들은 해시태그 캠페인의 #가족추천게임을 참고하여, 좋은 게임을 판단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녀들은 부모와 다양한 게임을 접하면서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구별하는 리터러시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인생게임 캠페인’의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서 얻은 경험과 의미를 나누고 싶은 마음, 청소년인 자녀, 조카, 동생, 후배, 친구들이 좋은 게임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사랑하는 게임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인생게임 캠페인’ 안에서 게임의 의미와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면, 좋은 게임을 즐기고 싶은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또한 게임제작사들이 더 좋은 게임을 만들게 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당장 한국 사회의 입시 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게이머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제안하고 싶다. 이런 작은 시도들이 쌓인다면, 게임의 문화 위상이 높아지고, 청소년들이 게임 리터러시 역량을 갖춘 열린 문화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출처

- 길용찬. (2019년 6월 7일). "게임은 문화다" 그들만의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게임인사이트. 2019년 6월 11일 수정

- 전경란. (2014). 디지털 게임이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 통계청. (2022). 국민여가활동조사, 65.

- 한국교육개발원. (2023). 2022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44.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6, 521, 588, 598, 66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