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될 수도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들'의 서론
2023년 8월 24일 오후 1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시작.
하루에도 10건 이상의 뉴스 기사들을 접한다. 지식이 늘고 경험이 쌓이면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 진보, 보수의 입장이 무엇인지, 왜 이런 입장인지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다. 비록 내 생각과 같지 않더라도 누구를 위해서, 어떤 이유로 반대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한 일을 찬성하는 입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찬성하는 이유는 뭘까? 진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한일 그리고 한미일 관계를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지, 오염수 처리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으니 방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책임질 수 없는 일
개인이든 조직이든 문제는 늘 발생한다. 해결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때가 있다. 바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실패한 경우다. 국가의 존재 이유 첫 번째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라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정치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찬성 근거가 있지 않을까 열심히 찾아봤다. 알아볼수록 더 답답해진다. 정부는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못 해보고,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들이 하는 얘기를 대변하고 있다. 그마저도 불완전하다. 알프스가 걸러내지 못하는 다른 핵종들에 대해서, 생물농축 등 생물학적 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면 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한 도쿄전력을 비롯하여, 원자력 업계는 원전 사고 날 가능성은 '100만 년에 한 번 일어날 확률'에 가깝다고 홍보해 왔다.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간이 자연재해를 완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0%에 가깝다던 일이 터졌다.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있을까? 적어도 도쿄전력 경영진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 법원, '도쿄전력' 경영진 모두 무죄 판결)
2021년 3월 4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간의 현지 조사 내용이 담긴 ‘후쿠시마 10주년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의 현장 대표를 수행했던 현지 전문가인 사토시 사토(Satoshi Sato)가 작성한 보고서다. 안전 문제까지 정치적 잣대를 가져와서 '그린피스니깐 특정한 입장에서 썼을 것이다'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기술 보고서다. 근거를 통해 이 사람이 분명하게 얘기하는 것은 한 가지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그동안의 조치로 인한 결과를 인정하고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왜 지금인가?
소식을 접하고 얼떨떨하면서 허망한 감정이었다. 2년 전에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일방적인 발표 이후, 자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대를 해왔기에 이렇게 쉽게 실행될 줄 몰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지금인가?"였다. 일본 정부는 30년 동안 오염수를 방류하고 이후에 폐로 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사고 난 원전을 폐로 할 기술이 없다고 한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조차도 아직 폐로 하지 못했다. 폐로까지는 100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이조차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폐로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치가 반영된 것이었다. 현재 사고 난 원전에 대한 폐로 기술은 없다. 그렇기에 체르노빌은 미봉책으로 방호벽을 덮어뒀을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에 남아 있는 핵연료는 체르노빌의 2배 정도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일본에서 2051년 폐로를 얘기하지만, 일본 언론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왜 지금인가?"에 대해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에 폐로 과정에 필요한 공간 확보가 필요하여 어쩔 수 없이 오염수를 방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에 폐로에 대한 계획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원전 내부를 파악하기 위해 로봇을 투입하지만, 여전히 내부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 로봇조차 금방 망가진다.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돈이 들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방류 결정을 내린 것은 문제 해결보다는 다른 목적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서두르는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를 시작한 지 만 5일이 지났다. 이 글을 쓰기 전 까지는 '이미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기술 분석」 보고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려 50년 이상을 내다보면서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개발을 동시에 추진해 50~100년 내 또는 그 이후가 되더라도 첨단 로봇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중략-
수십 년 뒤에 고농도의 방사성 피폭을 견뎌내고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는 맞춤형 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할 수 있다면 후쿠시마 원전 폐로 작업 생산성과 안정성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발단은 '속도'다. 준비되지 않은 기술을 서둘러 탐내다가 원전 사고라는 재앙이 벌어졌다. 그런데 멈추기 는 커녕 속도를 줄이고 있지도 않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사람들을 멈춰야 한다. 적어도 원전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게 입증되기 전까지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어야 한다.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라도.
"누구를 위해 이렇게 서두르는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 참고자료
- 서균렬(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제1공장",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3.08.28.
- MBC스트레이트 221회. "과학인가 괴담인가, 오염수의 정치". <MBC>. 2023.07.30.
- 이대로 신부(카톨릭신문 기획 주간). "[주간 시선] 바벨탑 앞에서". <카톨릭신문>, 2023.06.18.
- 장마리(그린피스 캠페이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안돼". <한국농어민신문>. 2023.02.28.
- 사토시 사토(前 GE 원자력 기술 전문가).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기술 분석". <그린피스>. 2021.03.04.
- 김건희, 김련우, 강성훈, 김효민. "100만 분의 1보다 낮은 사고 확률 :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드러내고 감추기". <한국민족문화 제77호>. 2020.11.
<현실이 될 수도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들>을 주제로 글을 쓰다가 서론이 길어졌다. 이글의 맥락을 이어서 조만간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