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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Feb 14. 2024

1위 자리를 뺏겼다

부모는 본인의 일부를 아이에게 주지만 아이는 자기의 전부를 부모에게 준다.


나는 왠지 이 말이 너무 좋다. 당연한 듯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말 같아서. 나는 현재 내 부모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나에게 주는 마음을 받다 보면 가끔 벅찰 때가 있어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5살이니 그럴 때예요..ㅎㅎ 이해해 주세요)


"엄마, 사댱해요“

아이의 조그만 몸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끔 소리 지르고 화내는 못난 엄마지만 그 조차 순식간에 용서당해 버리고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버리는 내 아이.

세상에 왜 태어났냐고 물으면 엄마를 만나러 왔다는 솜사탕 같은 말을 해주는 내 아이.


그렇게 나는 아이의 온 우주'였다.'




"엄마, 하부지 어디떠?"

"할아버지 ~ 일하러 가셨는데 내일 오실 거야"

"엄마, 하부지 언뎨 와?"

"지금 오고 계신대"

"엄마, 하부지 보고티퍼"

"..."


요즘은 나에게 하는 말의 상당 부분이 할아버지 이야기다.

가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남자아이라 그런 걸까? 아빠의 부재가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 걸까? 과연 아빠랑 한 집에 살았어도 아빠를 이렇게 좋아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사실 조금 쓰리기도 하다. 의미 없지만.


아이에게는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 주는 것은 기본값이고 잘 놀아주는 사람이 최고인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힘들다 강도를 따질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충실히 숙식을 제공하는 쪽도, 잘 놀아주는 엄마 쪽도 아닌 것 같다. 물론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약한 내 체력은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쉬는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이야 방전될 때까지 실컷 놀다가 픽 쓰러져 자면 그만이지만 나는 아이가 잠들면 집안일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살짝 억울하기도 하지만 아이는 엄마사정에는 관심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와는 일 때문에 최근 주말에만 만나고 있는데 하루, 길면 이틀 만나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지극정성이다. 남자다 보니 거칠게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제 아이를 들기도 살짝 버거워진 내 체력은 할아버지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나름 내가 주말마다 데리고 외출을 하는데도 할아버지와 하는 씨름 한 판이 더 즐거운 모양이다.

"엄마랑 하부지랑 조아~~"

(할.. 할머니는?)

매끼 손주 먹일 밥에만 온 신경이 가있는 할머니는 안타깝지만 아이의 우선순위에 들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 보고 티펐떠요"

어린이집에 하원을 시키러 가거나 집 앞에서 만나면 아이는 항상 나를 향해 두 팔 벌려 뛰어오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너무 사랑스러워 그 순간만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밥 실컷 먹여놨더니 엄마한테만 저러네"

못내 서운함을 표하는 할머니의 투정 섞인 말쯤은 그냥 웃어넘긴다. 나는 아이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니. 으하하. 이게 바로 1위의 여유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더 이상 하원후에 나를 만나도 반기지 않는다. 혹시 선생님 앞이라 부끄러워서 그런가?

"00아~~ 재밌게 놀았어? 보고 싶었어~~" 항상 활짝 웃으며 아이를 맞이하지만 반응이 영 마뜩찮다.

의아함 반, 서운함 반인 내 표정을 보고 선생님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못을 박으셨다.

"00 이가 ~^^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가 봐요^^ 할아버지가 데리러 온 줄 알았대요^^"



어제는 손을 잡고 등원하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느른 엄마댱 가?”

“응~ 오늘은 엄마랑 등원하고, 저녁에도 엄마가 데리러 올거야. 좋지?”

“…난 하부지가 제일 조아”


쿠쿵.



아아. 어느 순간 공식적으로 인정 돼버리고 말았다.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1순위라는 것이. 내려갈 곳은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도 2위라는 자리가 있었다. 전혀 자의적으로 내려온 자리가 아닌지라 한동안 부정했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우선순위라는 것을.

그래도 아직 잠은 엄마랑 자니까 내가 좀 낫지 않나? 어디갈 때 내가 없으면 안 가니까 말만 저렇게 하는거 아닌가? 기웃기웃 1위 자리를 탈환할 기회를 엿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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