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 남매 중 차녀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나는 10년간의 장기연애를 하고 있는 언니를 앞지르고 우리 집에서 개혼을 했다. 결국엔 뭐, 이혼했지만. 내가 결혼을 할 때 언니는 부러워했다. 언니는 빨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싫어하고 비혼주의인 내가 먼저 결혼을 서두를 때 그 누구도 딱히 행복하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로부터 4년 6개월 뒤, 언니가 오늘 결혼을 했다. 아주 행복하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이제 진짜 형부와 새로운 시작을 한 날. 연애기간이 장장 12년이나 되어 남동생은 "재혼이라니까"라며 농담을 했다. 오래간만에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남동생과 함께 언니부부의 행복을 비는 축가도 불렀다.
오늘의 언니는 내가 평생 알고 지내던 언니와 달랐다. 나는 초중고를 언니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등교 한번 같이 한 적 없지만 내 친구들은 모두 언니를 한 번만 봐도 내 언니인걸 알았다. '그래도 내가 낫지!'라고 생각하며 닮은 걸 부정하던 내가 오늘은 인정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니는 예뻤다. 역시 행복한 여자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이길 수가 없다.
또, 나는 언니가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사람인 걸 몰랐다. 우리는 정답고 살가운 자매는 아니었기에 각자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는데 오늘 언니는 내가 이때까지 가본 결혼식 중 남녀를 통틀어 거의 친구가 제일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쪽 식권만 260장이 나갔는데 아마 그중에 절반은 언니본인의 손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하객수를 자랑했다. 정말 놀랐다. 우리 언니 나랑 달리 완전 인싸였네?! (형부도 파워 E시라서 양가 모두 친척이고 친구들이고 사람이 정말 많아서 보기 좋았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는 마음이 조금, 아주아주 조금 이상하다. 내가 결혼에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약간의 분노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아주 약간의 환멸, 그립기도 아쉽기도 한 듯한 애매한 마음, '나는 실패했지만 그대들은 행복하게 잘 살아요.' 뭔가 100% 축하의 마음이 아니라 불순물이 낀 것 같아 느끼는 찝찝함까지. 나는 워낙 좁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혼 후 결혼식에 참석한 것도 몇 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언제쯤 어색한 마음 없이 100%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남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정말로 그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매일매일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대체로는 행복한. (실제로 내 지인들은 모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그래서 내가 이혼을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이 깔려 있다. '다들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잖아. 그런 게 결혼생활이라면 나는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 나는 대체로 불행했고, 가끔 숨을 쉴 수 있었기에.
내 실패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그대들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살짝 삐뚤어진 축하.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데, 허공에 대고 변명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
이로써 아빠의 버진로드 행진은 끝이 났다. 조금은 후련하실까. 형부가 축사를 해주십사 여러 번 부탁했지만 개혼을 하던 작은딸의 결혼식에서 잘살아라 한 축사가 저주처럼 되어버린 현실 때문인지 한사코 축사를 거절하던 아빠의 마음이 어떠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축하마저 조심스러운 그 마음에 나도 신혼여행 중인 언니에게 말로 꺼내지 못한 축하를 글로나마 전해 본다.(언니가 내 브런치 애독자이기 때문이다.)
부디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 일구길~~
늦었지만 결혼 너무 축하해! 여행 즐겁게 잘하고 와~~
(글에서 편의상 '오늘'이라고 표현한 것은 5월 11일입니다. 그날 적다가 글을 완성하지 못했어서 오늘 발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