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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Aug 13. 2024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나의 눈부신 친구

널 선망하고 질투하지만 널 지켜줄 거야. - 릴라와 레누의 이야기

지난달,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을 뽑았다.  500여 명의 작가, 시인, 평론가, 기타 등등에게 21세기 Best Book 10권을 골라달라고 한 결과물이다 (설문지에는 Best book을 고르라 했을 뿐, Best의 뜻을 정의하지는 않았다. 번역본 포함, 영문으로 출간된 책으로 한정되었다.) 21세기의 4분의 1을 겨우 지났을 뿐이니, 21세기 1/4분기 결산 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21세기 최고의 책 중 1위를 차지한 엘레나 페란테"나의 눈부신 친구 (My Brilliant Friend)".  원작은 이태리어로 출간되었고 2012년 영문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이태리에서도, 북미에서도, 찬사를 받은 이 책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1권이다.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건, 엘레나 페란테가 필명이라는 사실.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책만 출간하기에, 이태리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알려진 것이 없는 작가라고도 한다. 나폴리 태생이고 여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어디에 사는지, 몇 년생 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I don't want to read anything else that you write."
(릴라) 이제 네가 쓴 건 읽고 싶지 않아.

"Why?"
(레누) 왜?

She thought about it.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Because it hurts me, " and she struck her forehead with her hand and burst out laughing.
(릴라) "왜냐면... 아프니까" 그리고 손으로 이마를 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릴라레누, 나폴리 변두리 어디쯤 가난한 동네에서 1학년 동급생인 두 여자아이. 둘은 서로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사이로 출발해서 동지가 되고 친구가 된다. 레누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고 사내아이들이 장난을 치면 도망가는, 그 시절 보통 여자아이에 가깝고 릴라는 통념을 깨는 야생 고양이 같은 아이다.  누가 시비를 걸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맞서서 싸우고 학교선생님에게도 대드는 겁 없는 아이, 릴라.  


둘 다 공부를 잘하지만, 우등생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레누와 달리, 천재인 릴라는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친다. 가르쳐준 사람도 없는데 세 살에 이미 읽고 쓰기를 깨우쳤고 동급생들이 더하기 빼기를 하고 있을 때 릴라는 이미 암산으로 곱셈 나눗셈을 하고 있다.


부동의 일인자 릴라는 레누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지만, 차라리 릴라 밑의 이인자라면 괜찮다. 어차피 릴라는 이길 수 없는 존재니까.  작고 연약하나 누구보다 세고 독한 아이, 릴라. 레누는 그런 릴라를 질투하면서 동경하고, 두려워하면서 또한 신뢰한다.  

 

  

(릴라) "Whatever happens, you'll go on studying."  
"넌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계속해야 해."

(레누) "Two more years:  then I'll get my diploma and I'm done."
"2년만 더 하면 졸업이고 그럼 끝이야."

(릴라) "No, don't ever stop:  I'll give you the money, you should keep studying."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돈은 내가 줄게. 넌 계속 공부해."

I gave a nervous laugh, then said, (레누) "Thanks, but at a certain point school is over."  
어색하게 웃으며 난 말했다. "고맙긴 한데 언젠가는 공부도 끝내야지"

(릴라) "Not for you: you're my brilliant friend, you have to be the best of all, boys and girls"
"안되. 넌 나의 가장 총명한 친구야.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든 이들 중에서 최고가 되어야 해."


둘 다 우수한 성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만 1950년대 나폴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여자아이를 쉬이 중학교에 보내줄 리 없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아들도 안 보내준) 중학교에 딸내미를 보내줄 리 없다. 담임에 교장까지 나서서 설득과 회유와 협박을 해도 릴라의 부모님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결국 천재 릴라는 중학교 입학시험조차 치지 못한다.


형편이 살짝 나았던 레누의 부모는 담임의 조언(같은 협박)에 이기지 못하고 딸의 중학교 진학을 허락한다. 언뜻 생각하면 중학교에 간 레누가 더 행복해지겠지 싶지만, 둘의 삶에서 행복의 추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꼬질꼬질 더럽고 깡 말랐던 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되고,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한 레누는 (학업에 시달리는) 안경과 여드름을 장착한 소녀가 된다.   



레누와 릴라 - 둘의 감정선은 복잡하다.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훼방 놓기도 하고. 서로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겐 말해도 서로에겐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둘은 동지다. 그리고 서로에게 고무적인 존재다. 릴라의 총명함은 레누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고 레누가 학문적으로 성장하게 한다.  여름의 중간, 게으른 주말에 읽기 딱 좋은 책이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계속 잘라내는 중이다.)


여름 내내 불량식품 같은 책만 읽다가 "나의 눈부신 친구"로 소설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매혹됐다. 소설이라는 매개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1950년대 나폴리 변두리 어느 곳, 오래된 빌라 앞마당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각자 인형놀이를 하는 릴라와 레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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