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May 03. 2024

삼체 - 하드SF는 독자에게 친절할까

외계인은 인류에게 친절할까

주말 저녁, 요즘 넷플에서 핫하다는 삼체를 틀었다. 시작부터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잔인한 폭행과 성난 군중의 모습이 이어졌다.  10여분쯤 보다가 껐다.  소설 "삼체"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바, 이건 반드시 책으로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음날 서점으로 달려갔다.


지구는 태양이 하나라서 다행이다.

삼체라는 제목은 물리학의 고전적인 수수께끼를 뜻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3개의 태양을 가진 미지의 행성 Trisolaris (트라이솔라리스)를 소개하기 위해 등장한다.  Trisolaris에 사는 외계인들은 3개의 태양 중 몇 개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뜰지 예측할 수 없다.  이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지구 문명의 발달은 태양이 하나라서 가능했음을.  주기적으로 뜨고 지는 태양이 없었다면 우리의 문명과 과학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달할 수 없었을 거란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중국의 야만성을.

문화혁명 - Cultural Revolution -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문화혁명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나는 그 잔혹함과 무식함에 놀랐다. 지식인층을 탄압함으로써 중국은 스스로 사고하는 대중 대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노동자들을 얻었다. 대중을 지배하려면 그게 편하겠지.  깨우친 대중은 생각하고 분석하고 질문하니까. 생각 같은 건 우리가 할 테니 너희들은 노동력이나 제공하라는 편리한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하드 SF가 이런 거구나.

물리학 컨셉을 따라가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참고로 이 책은 SF 중에서도 하드 SF (Hard Sci Fi)로 분류된다. 과학적 논리와 컨셉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좋아는 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 물리와 놀아 볼 기회가 없었던 나 같은 사람은 추상화를 감상하듯 그저 상상의 영역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꽤 있다.  친절하게 쓰려고 애쓴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데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런가 보지, 하고 넘어가자. 모든 걸 이해하려 하지 말자.



책을 사기 전, Good Reads에서 리뷰를 찾아봤다. 의외로 호불호가 많이 갈려있었다.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북미 독자의 기준으로 본다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에 문화의 차이가 확실히 있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중국이름도 생소하다.  앞서 말한 하드 SF의 장벽 또한 넘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작가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 2019년에 잡지 뉴요커 인터뷰 중, 기자가 중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위구르족 탄압에 대해 묻자, 작가 Cixin Liu는 '위구르 족이 테러를 저지르게 놔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중국 정부가 위구르 족을 가난에서 구해주고 있고 다른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 답변에 분노한 많은 이들이 작가를 비난했다. (책을 읽다 작가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아봤다. 놀랍게도 아직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라도 저런 질문을 받으면 내 생각이 어떻든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작가가 아직 중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용감한 책이다.  SF소설에 문화혁명의 잔인함을 그만큼이나 담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실제로 중국어 원서에는 문화혁명에 관한 부분이 1권 중간지점쯤 묻혀있다고 한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영문번역본이 나오면서 문화혁명 부분을 책의 가장 첫 챕터로 옮길 것을 제안했고 작가는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본인의 의도도 원래 그러했다.   


The child asks the adult 'Are they heroes?'  The adult says no.
The child asks, 'Are they enemies?'  The adult again says no.  
The child asks, 'Then who are they?'  
The adult says, 'History'.

아이가 물었지. '그들은 영웅인가요?' 어른은 아니라고 답했어.
아이가 다시 물었지.  '그들은 적인가요?' 어른은 또 아니라고 했어.
그러자 아이가 물었어. '그럼 누구예요?'
어른이 답했어. '흘러간 역사'

- The Three-Body Problem , Last page of Chapter 26


문화혁명 시절, 지식인 처단에 앞장섰던 홍위군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었다고 한다) 후에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한다.  책 속, 전직 홍위군들이 "단풍"이라는 영화에서 홍위군의 무덤이 나오는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겨우 14살, 15살짜리 소녀들이 행한 악랄한 폭행, 그리고 그녀들의 비참한 말로.  머리가 복잡했다.  


3부작 시리즈 첫 책을 읽었을 뿐이다. SF물 치고 색다른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번은 읽어볼 만하다.  물리학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2권이 미친 듯이 궁금하진 않은데, 읽어는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달리다 - 심윤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