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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Apr 15. 2024

사랑이 달리다 - 심윤경

맛있는 과자같은 소설

머리를 비워줄 신나는 소설이 필요할 때, 딱 좋은 소설이 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기생충학자 서민이 추천했던 "재미있는 책" - 심윤경 작가사랑이 달리다.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뒤틀린 부분이 있고, 메시지를 던진다고 하기엔 좀 골 때리는 내용이다.  주인공 혜나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그녀가 한눈에 반한 남자, 욱연의 이야기다.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막내딸 혜나 - 위로 오빠가 둘이고, 재력가이신 아빠, 낭만주의자 엄마가 있다.  그녀의 가족은 얼마전 풍비박산이 났다.  아빠는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살림을 차려 나갔고, 결혼까지 한 성인임에도 아무 죄책감 없이 아빠카드를 쓰고 다니던 혜나에게 돈줄이 끊기는 위기가 닥친다.  


집에서는 인기 폭발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밖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하나쯤 그럴듯한 놈을 꼬시는데 성공하면 반 미치광이 같은  우리 식구들이 놀래켜서 쫓아버렸다.
혹시 저녁 식탁의 저주를 무사히 넘기는 간 큰 남자가 있더라도 작은오빠가 차에 태워서 빛의 속도로 한번 달려주면 끝이었다.



주인공 혜나의 작은 오빠, 김학원 -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저렇게 금융사고를 치고 다니는 오빠가 있다면, 죽이고 싶기도 하겠고, 차라리 내가 죽지, 싶기도 하겠으나, 그것을 제외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만 본다면야 세상에 저런 오빠가 어디 있을라고. (이 지점에서 심윤경 작가가 오빠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본다. 나도 오빠는 없지만, 오빠 있는 친구들 중 오빠가 자길 이뻐한다는 애는 단 한 명도 못 봤다.)


언니밖에 없는 나도 저런 오빠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알고는 있지만 저런 오빠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게 된다. (금융사고 치는 건 빼고...) 


그 들의 삶이 그토록 개판이라 한들, 저렇게까지 내 편 들어주고 조건 없이 내가 최고라고 믿어주는 오빠가 있다면, 가끔 미친 질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처럼 귀엽게 생긴 애는 더 잘난 남자랑 살아야 해,라는 미친 소리에 진심을 담아 말하는 오빠.  


나는 네 아빠를 정말로 사랑했고 네 아빠도 그랬단다. 우린 정말 치열하게 사랑했어. 그렇게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점이 중요한 거야. 끝까지 잘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끝나더라도 크게 여한은 없어. 인생을 건 진짜 사랑은, 그 자체로 훈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헤어지게 마련이니까."


혜나의 엄마 또한 특이한 캐릭터다. 남편이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나서 결국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데 어쩔...? 이러면서, 상처를 털어버리는 희한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재산분할도 똘똘하게 챙겨 오지 못해서 아들들의 원성을 듣는 허당이다.  그러나 이분은 나이가 들었어도 미모가 먹어주는 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여간 이분도 너무 재미난 분이다.  혜나의 가족들은 진정 미치광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하나같이 귀엽다. 계산이 밝은 큰 오빠와 그의 아내가 좀 덜 귀엽긴 한데, 이들의 범상치 않은 재물 숭상 또한 웃기는 포인트 중 하나다.



이상하게 정욱연을 보면 자꾸만 울고 싶었다. 사실 정욱연을 향한 나의 사랑에서 육체적 욕망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미미했다. 이렇게 덮칠까, 저렇게 덮칠까 호시탐탐 궁리를 했지만 그건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자가 남자를 또는 남자가 여자를 차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섹스였기 때문에 나도 그 방법을 한번 고려했을 뿐이고, 정작 그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건 섹스가 아니라 울음이었다.


주인공 혜나와 그의 왕자님, 정욱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분명히 불륜인데, 연애담 같은 느낌?  혜나는 오빠친구 정욱연에게 단번에 빠져버린다. 혜나의 사랑은 덕질하던 어린아이가 성덕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일 뿐, 불편함이나 껄끄러움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끈적거리는 성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런 생각을 한다. 끝이 어찌 되든,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랑 한 번쯤은 해봐야 한다고.  훈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Rite of Passage/성인식이 아닐까?  그렇게 성장하는 거다.  당연히 결혼 전에, 20대에 해야 한다.  나이 들면 못한다.  주름이 생기고, 배가 나와서가 아니라, 이성이 뇌와 가슴을 지배하게 되니까.  그래서 할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을 하게 되는 기억일지라도, 지질했던 내가 부끄러워도, 젊은 시절 모든 걸 걸었던 사랑의 기억 하나 정도는 있어야 늙어가는 것이 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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