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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오 Oct 06. 2023

(동시집) 시인의 말

- 졸저 동시집 '안녕, 피노키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밤늦게 먹은 수박 때문인지 탱탱해진 오줌보를 안고 잠 깬 적이 있어요.

  비몽사몽, 반쯤 졸린 눈을 뜨고 마당 가 화장실을 나오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밤은 검정이어서 캄캄해야 하는데

  온통 푸른색으로 환했어요. 이상했어요.      


  밤인데 밤 같지 않은 걸 뭐라고 할까요?

  파란색 물감에 희붐한 안개를 듬뿍 섞은 그림처럼

  나무도 들판도 마을도 집도   

  바람벽에 기대놓은 자전거까지도 보이는 건 모두 푸르스름하게 빛났어요.

  그건 달빛 때문이었어요.

  수박보다 크고 쟁반처럼 둥근달이 푸른빛을 뿌리며 지붕 위에 두둥실 떠 있었거든요.     

  마당으로 나온 나는

  물끄럼말끄럼 푸른 달이 만들어 내는 달빛 세상을 바라봤어요. 한참 그랬어요.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마당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난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어요.

  목덜미에 소름이 돋고, 우둘투둘 돋아나고

  초대하지 않은 고깔 마녀가 끼룩끼룩 빗자루를 타고 어둠 속에서 날아왔어요.

  파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발밑에서 하얀 손이 올라와 속삭이고

  흰 옷자락 유령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밤하늘을 떠다녔어요.    

 

  붕붕붕, 양탄자를 타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발바닥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어요.

  나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었어요. 그러고는 울타리를 넘어오는 양 떼를 세기 시작했어요. 

  뿔 달린 양 한 마리, 뿔 없는 양 두 마리, 뿔 달린 양 세 마리……. 

  울타리를 넘어온 양 떼가 무사히 우리로 들어가고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여전히 푸르스름한 달빛 세상.     


  나는 달빛 목욕탕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흠뻑 달빛에 젖었어요. 두 손을 맞잡고 힘을 주면 푸른 달빛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어요.

  나는 지구별을 떠나 우주의 어느 아름다운 별에 서 있는 걸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은 책각책각

  성실한 시계처럼 지나갔어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시골 할머니 집은 사라지고 하나둘 공장이 들어왔어요. 마을 한가운데 넓은 길이 뚫리고 들판에서는 선인장처럼 아파트가 자라났어요.

  그래서일까요? 

  푸른 달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요.

  수박을 먹은 날이면 한밤중에 아파트 창문을 내다보지만, 창밖은 언제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거려요.

  푸른 달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 시집에 실린 51편의 동시는 푸른 달밤에게 보내는 내 손 편지예요.

  혹시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면

  이 편지 좀 전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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