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 시절
각종 '페이'의 시대가 열렸다.
지갑도, 카드도 없이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결제가 가능하다. 현금에서 신용카드로, 핸드폰으로 결제방식이 바뀔 뿐이다. 돈 쓰기 조금씩 더 쉬워지는 것 같달까. 아니, 돈 나가는 느낌이 점점 안 드는 세상인데 왠지 기시감이 든다.
1999년 대학생 때 신규 카드 발행자가 우후죽순 늘었다. 사인 한 장이면 카드가 생기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증빙서류나 신용도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때라 가능했다. 이제 막 20살, 성인이 된 학생한테 신용카드는 어른 세상으로 가는 새로운 문이었다. '내가 낼게' 하며 카드를 내밀면, 커리어우먼이라도 된 착각이 들었다.
카드청구서의 무서움도 몰랐다. 나름 지출 합계를 내면서 카드를 쓰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오산이었다.
기록되지 않은 소비가 쌓였을 때 얼마나 큰 산으로 돌아오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달 뒤, 내 예상을 웃도는 금액이 청구됐다. 지금 생각하면 큰돈은 아니지만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입장에서 분명 과소비였다.
카드값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시급이 2-3천 원이었다. 초반 카드값은 몇 십만 원 정도 충분히 감당이 가능했다. 커피숍, 일식집, OMR 확인, R&D 리서치조사 등등..
'주인공은 곧 카드값을 해결하고, 아르바이트비로 저축을 시작했다'와 같은 해피엔딩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카드값과 용돈이 충당이 되니, 생활은 카드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다. 점점 카드값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배짱은 커지고, 결제금액도 늘어났다. 그때 리볼빙의 세계를 처음 알았다.
리볼빙은 결제금액의 10%만 결제해도, 연체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다음 달로 요금이 이월되면서 고이자가 붙는다. 카드를 안 쓰면서 갚으면 어떻게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이미 카드 중독에 빠진 뒤였다.
리볼빙은 순간순간 어려움을 해소하는 열쇠가 됐고,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어려웠냐는 듯 다시 카드를 썼다. 매달 갚는 금액은 전체 금액의 일부고, 소비는 일정하니 빚이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지인한테 카드값을 빌리고 매달 얼마씩 갚아나갔다. 카드의 무서움을 깨닫고 빚을 모두 청산한 뒤 신용카드를 잘랐다.
당시 내 소비습관은 지갑에 만원이 있으면 만원 모두 쓰고 집에 들어오는 식이었다.
경제관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철없던 20살. 카드사를 원망할 수도, 이제 막 20살이 되고 철없는 나를 타박하고 싶지 않다. 그 덕에 각종 아르바이트의 세계를 알았다. '덮어놓고 쓰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를 몸소 체험했다. 인생에서 진한 교훈을 얻었다며 한 때 부끄러운 과거로 살포시 묻고 나는 정신승리를 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저 카드를 조절해서 써야 하는구나 정도 작고 당연한 깨달음이 전부였다.
취준생의 시간이 지나 일을 시작했다.
작아도 소중한 게 월급이라는데, 내 월급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소중하지 않았다. 차라리 스트레스를 푸는 데 쓰는 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노는 데 월급은 고스란히 소진됐다. 아깝다는 생각도 딱히 안 했다. 아깝다는 생각 자체가 경제관념은 있는 거니까.
'내가 번 돈, 나를 위해 쓸 뿐'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겠어?'
제대로 놀면서 돈을 쓴 것도, 나를 위한 어떤 투자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커리어우먼 코스프레를 하고있을 뿐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굳이 편들자면,
인생의 청사진이 없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쳇바퀴 도는 일상을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학창시절, 꿈을 위해 예술계를 선택하려했으나 이루지못한 채 대학을 갔다. 생각보다 깊은 방황을 시작했다.학교생활은 겉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면 다 의미없어’ 하며, 그저흘러가는 대로 삶을 소모하고 있었다. 자포자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을 그때도 했더라면,
-청사진은 저절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직접 그려나가는 것임을 알았겠지.
-원하는 게 꼭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겠지
-1순위가 안된다면, 2순위 3순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찾으려 애썼겠지.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첫 번째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겠지
-세상은 넓고 배울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내가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일과 관련된 파생된 직업도 있을 거고, 시야를 확장시키면 또 다른 분야가 보였겠지.
-한 번 잘못된 선택이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았겠지.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려는 의지도 생겼을 테고,
커리어우먼 코스프레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알고 돈을 모아야겠다는 목적이 분명 해졌겠지.
안타깝게도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하루하루 나를 불쌍하게만 여기며 스스로 패배자임을 인정한 채 세월이흘러가는 걸 무덤덤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