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뮤즈 Nov 13. 2024

'에이, 우리 사이에'

일상 속 짧은 파편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처음엔 그 놀라울 정도의 솔직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때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지치던 나에게 이 말은 부담 없이 다가왔다. 항상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쉽게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고 믿었던 나에게, 그 말은 조금 색다른 안도감을 주었다.


'부탁할 때는 충분히 양해를 구해야 한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민폐는 끼치면 안 된다.'


이 기준들이 남들에겐 평범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나에게는 꼭 지켜야 할 소중한 원칙이었다.


그녀는 내 20대 초반에 거리낌 없이 다가온 존재였다. 그 친구는 금세 내 삶에 들어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선을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그의 태도에 나는 마치 물에 젖은 신문지처럼 서서히 물들어 갔다. 그 친구는 ‘가식’이 없었다. 빈말도,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는 관계라니. 새롭고 편안했다.


우리는 3살 차이였다. 한 번은 수다를 떨다가 동생이 장난처럼 욕을 했다. 친근함에서 나온 가벼운 표현이었는데, 인지조차 못하다가 몇 분 뒤 깨닫고 서로 웃음이 터졌다. 길 한복판에서 배를 움켜쥐고 울 듯이 웃었다. 우린 그냥 ‘친구’였다. 가족 같은 유대감을 쌓아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때로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녀는 가끔 “에이, 우리 사이에”라며 나를 힘들게 했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 일들이 쌓이고 쌓여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 상황이나 기분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연히 나도 점점 지쳐갔고, 어느새 그녀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일도 어려워졌다. 그렇게 우리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먼저 손을 놓았다. 나는 이 관계에서 너무 지쳐버렸다. 


이제 “에이 우리 사이에…”라는 말이 무섭게 느껴지지만, 원래 나쁜 말은 아니다.

힘든 일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고마워. 너도 힘들 텐데 들어줘서…” 

“에이, 우리 사이에.”


이 말은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이 본인의 편의대로 해석되어 악용될 때는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우리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그런 규칙을 세우는 건 너무해. 네가 너무 냉정한 거야”라는 식으로 상대의 정당한 요청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배려조차 피하는 무책임함이 드러날 수도 있다.


즉, 이 말은 상호적이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친한 친구가 룸메이트가 되었다고 하자. 서로 배려가 필요한 상황에서 A가 B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다른 사람을 불쑥 데려오는 일이 잦아지면, 참다못한 B가 규칙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A는 “조심할게, 미안해” 대신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까지 하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단연코 없다고 생각한다. 


몇 년이 흐른 아직도 종종 그녀가 그립다. 그만큼 그녀는 내게 큰 존재였다. 아마 평생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느 날 감정에 휩쓸려 전화를 걸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관계를 회복하더라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여력이 없다. 그저 가끔씩 추억을 꺼내 그리움을 채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녀는 알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지켜야 할 선은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그 선이 희미하거나 적을 뿐이라는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