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스크루지' 있다.
남편이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마음먹은 건 마이너스 통장을 갚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한 푼 두 푼 쓰지 않고 빚을 갚아나가니, 통장 잔고는 점점 0에 가까워졌다.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기 시작했다. 겨우 만들어낸 0은 순식간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0이 되기까지는 한 세월이었지만, 마이너스가 되는 건 찰나였다. 그 현실은 정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지치게 했다. “돈 때문에 그래? 돈은 다시 벌면 되지.” 남편이 내게 건넨 이 말이 너무 가볍게 들렸다. 마음속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 감정의 이름조차 몰랐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이 시기에 돈은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삶 그 자체였다.
‘0으로 만들겠어.’
‘카드를 쓰지 않겠어.’
‘지출을 줄이겠어.’
‘+로 만들어 보겠어.’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나갔다. 성취감과 뿌듯함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마치 메말라버린 흙에 물을 주면 미친 듯이 흡수하는 것과 비슷했다. 돈에 대한 공포를 느낀 직후의 성취감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밤을 새워 쌓은 모래성이 붕괴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실감은 집착과 세트였다. 생존본능이었을까. 아무리 다시 무너질 모래성이라도, 쌓아야 한다는 의지가 불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풍차 돌리기 적금’이었다.
풍차 돌리기 적금이란 매달 10만 원씩 새 적금을 드는 방식이다. 첫 달엔 10만 원짜리 적금 하나, 둘째 달엔 10만 원짜리 두 개... 그렇게 누적된다. 하반기로 갈수록 부담은 커지지만, 이를 위해 미리 돈을 조금씩 따로 모아두었다. 그렇게 1년간 정말 치열하게 돈을 모았다. 오직 풍차 돌리기를 완수하는 미션만 존재하는 듯했다
1년 뒤 매달 120만 원씩 적금이 돌아왔다. 기쁨도 잠시, 입맛만 다시다가 그 돈은 다시 한 통장에 모았다. 몇 달을 더 모으고, 1,000만 원짜리 예금을 가입했다. 남는 금액은 다시 풍차 돌리기로 돌렸다. 그렇게 조금씩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풍차 돌리기를 하며 '돈 모으는 재미'를 알았다. 매달 돌아오는 적금은 오래전 묻어둔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한 푼도 안 건드리고 다시 모았지만, 가끔 몇만 원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작은 보상도 누렸다. 2~3년이 지나니 예금은 예금대로, 적금은 적금대로 골고루 돌아왔다. 마치 자동급수 시스템 같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숫자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매달 은행에 직접 가서 적금을 들었다. 은행은 내게 도서관이었다. 곳곳에 붙은 상품 포스터를 보며 관심을 갖고, 직원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적금을 들 때 받는 샴푸나 미역 같은 사은품은 작은 보상이었다. 그렇게 늘어난 통장은 두 손으로 쥐면 벽돌 같았다.
이때부터 중독증상이 나타났다. 손으로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면서 '적금'은 '스크루지 황금' 같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 삶의 질을 올리거나, 투자도 하지 않았다. 마냥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두려웠다. 돈이 줄면 뺏긴 느낌까지 들었다. 통장의 숫자를 지키고 늘리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점점 숨이 막히는 기분은 무시했다.
쉴 새 없이 돌아만 가던 풍차 돌리기는 3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나는 또 다른 허탈감에 시달렸다.
돌아보니, 당시 돈은 내게 삶의 목표이자 안식처였다.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했지만, 그 과정에서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잊은 것은 아니었을까? 돈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그 자체로 삶의 가치를 삼아버린 내 모습과 마주하게 했다.
삶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그 숫자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망각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