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속절없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 그동안 버텨온 것이 무색하게, 사소한 계기 하나로 힘없이 '툭' 끊어지는 날.
내 감정에 내가 취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날 말이다. 어제가 내겐 그런 날이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울컥 치솟아오르는 울음을 삼키느라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차마 버스 안에서 펑펑 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야속하게도 한동안 꼭꼭 숨어있던 눈물은 억지로 누르려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크게 치밀어 올랐다.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손으로 눈물을 치워버렸다.
하지만 꾸역꾸역 잘 버텨왔던 내 마음은 그 순간 하염없이 끊어져버렸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 흐물거렸고, 버틸 힘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올라오는 울음을 막지 못한 채 한동안 소리를 죽인 채 끄억끄억 울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다 쏟아버리자.’
내 마음은 그렇게 결심이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울음을 토해냈다. 사실 한 번 크게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작은 해소감은 또 한동안 버틸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울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무 오랫동안 눌러온 감정이 얼마나 커졌는지 예상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나를 붙잡은 건,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버티는 데 모든 힘을 다쏟아서 오늘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졌는지도 모르겠다. 슬픔 보다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늘 웃는다고 진짜 웃는 건아닌데, 가끔은 억지로 웃을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 당연한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내가 왠지 억울했다.
안다. 이 모든 게 의미 없는 투정이라는 걸. 깊은 우울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내 문제라는 걸.
결국 내 몫이라는 걸.
한참 울고 나니, 차가운 이성이 서서히 돌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장점은,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기가 빨라졌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면 이를 끊어내는 나만의 브레이크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할 때 나는 의도적으로 생각을 끊는다.
예를 들어,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보면 단순히 "낙엽"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생각으로도 안 되면, 입 밖으로 뱉어버린다.
"낙엽."
모양새는 우습지만 생각의 연결을 끊으면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지켜주는 주문을 건다.
어차피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괜찮다.
내가 무조건 옳다.
다소 이기적인 이 주문들은 내가 버티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방식이자,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나만의 도구다. 오늘도 나는 "내가 무조건 옳다"는 주문을 걸었다. 나를 자책하지 않기 위한, 나를 지키기 위한 주문이었다.
오늘 울음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변수가 등장할 만큼, 나는 내 마음을 고르게 다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내 마음의 균형을 더 잘 살피고 싶다.
한쪽만 붙잡으려 하지 말고,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잡으며 살아야겠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 더 단단히 다듬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