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

by 감정 PD 푸른뮤즈

가슴이 답답했다.

별 일은 없었다.

평온해야 할 일요일 저녁 샤워를 하다 문득 알 수 없는 갑갑함이 몰려온 게 전부였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구나.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거실로 나가 남편에게 말했다.

대화보다 혼잣말에 가까운 토로였다.


"우리, 시골집을 지어 살아볼까?"


말하고 나서 나도 흠칫 놀랐다.

마음은 원하는데 행동할 용기는 없다.

그렇게 가슴속에 저장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수십 개는 넘는다.

핑계와 회피로 미뤄둔 그것들이

내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문제 덩어리가 되었다.


사람은 본래 감정적으로 불편한 문제를 떠올리면 '해결'보다 '회피'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떠오름이 쌓여 무력함과 정서적 피로를 만든다.


내게도 그랬다.

'고인 물'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늘 다른 곳을 향한다.


마음은 화성에, 몸은 지구에

몸은 침대에, 머리는 책상 앞에.

견우와 직녀보다 더 먼 심리적 거리.


변화는 바랄 수도 없는 상황 앞에서

그 답답함은 결국,

풀지 못한 문제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감각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

'새시교체'라는 숙제.

우리 집은 노후된 아파트다.

틈 사이로 먼지와 바람이 들어온다.

베란다 새시틀은 점점 삭고

겨울이면 난방을 해도 웃풍이 심해 실내는 서늘하다.

사실 홈쇼핑을 보고 견적도 받아봤다.

그게 끝이었다.


'비싸네. 일이 너무 커져. 시끄럽고, 분진도 걱정이고... 관둘까?'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새시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겨울만 되면 '저놈의 새시.. 이번엔 꼭 바꾸자'는 의미 없는 다짐을 하지만,

날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미뤄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수십 개의 일들은 개별적인 미루기가 아니라

내가 풀지 못한 문제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OX, 이분법으로 풀고 있었다.


할까? 말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삶의 문제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으니 틀렸을 때 모든 책임도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생각은 깊어지고 결정은 멀어진다.

이것은 결정피로(Decision Fatigue)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결정을 많이 내릴수록, 인간은 더 나쁜 결정을 하거나,
결정을 미루거나, 혹은 아예 포기하게 된다.


결정할 일이 많아질수록 판단을 피하고 싶어지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해 '그냥 하지 말까?'라는 방향으로 쉽게 기울어진다.

그 순간 문제는 다시 머릿속으로 되돌아간다.

해결되지 못한 채 또 하나의 부담이 되어 떠돈다.

이것이 바로 반복되는 답답함의 정체다.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제를 단순화하지 말고,

오히려 더 구체화하는 것.


할까 말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로 질문을 바꾸는 것.


새시를 예로 들면,

바꿀까 말까 가 아니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내게 맞는 선택지는 뭐가 있을까?


그 순간부터 비용, 브랜드, 분할상환, 시공 방식, 소음, 업체 A/S 같은

다양한 선택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의 기준이 생기고 구체적인 행동이 떠올랐다.


결국 머릿속에 가득 찬 문제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을 THE END로 끝내는 것.

To Be Continued 상태로 두지 않는 것.


나는 시작보다 완성이 훨씬 어려운 사람이다.

침대에 누워서 불 끄러 다시 일어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끝이 나야 새로운 게 들어온다.


머리만 싸매고 책상에 앉아서 끙끙대지 말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망설이는 일들을 하나씩

'문제'로 바꾸고

'어떻게'로 질문하고

'선택지'를 만들어

풀어나가야 한다.


이 글도 마찬가지였다.

'쓸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를 묻는 순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 막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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